죄와 벌 - 톨스토이, 청춘의 오만, 절망의 대담함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의 에세이집을 읽고 죄와 벌을 읽기로 결심했다. 유독 진지한 그의 도스토예프스키에 대한 존경심을 함께 느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러시아의 작가. 죄와 벌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도스토예프스키를 떠올릴 것이다. (도예스토스키, 도스토엡스키, 도스토스예스키 등으로 불리기도 한다.)



 부끄럽게도 고전을 좋아한다면서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을 제대로 읽어본적이 없다. 어쨌든 좋은 기회라 생각되어 읽게 되었다. 요즘 즐겨이용하는 당근마켓에서 중고거래를 하려고 약속까지 잡았다가 혹시 몰라 동생에게 연락해보니, 책장에 꽂혀있다고 했다. 거래 30분전 취소하게 되었다. 돌아와 동생 방 책장을 보니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버전의 죄와벌이 두권 꽂혀있었다. 





#러시아의 대문호 도스토예프스키 

 우선 책을 읽기전에. 물론 나는 다 읽고 찾아봤지만 도스토예프스키에 대해 좀 알아볼 필요가 있다. 워낙 유명해서 그가 죄와벌을 쓴 러시아 작가라는 사실은 알지만 그 이상 다른 이야기는 전혀 알지 못했다. 그냥 러시아의 대문호다. 라는 정도만 알고 있었다.



 도스토예프스키는 러시아의 작가. 1821년 태어났다. 모스크바 빈민가의 병원에서 근무하던 아버지 덕에 도스토예프스키는 가난으로 고통받고 있는 극빈층들과 이야기할 기회가 많았다. 성장하며 수학을 전공했으나 문학에 흥미를 보였고 내기 당구에 빠져 빚을 진다. 


 그의 소설 데뷔작은 커다란 인기를 가져다 주었다. 사회주의 급진파 모임에 참가하기 시작했는데, 농민 개혁운동의 주동자로 체포되어 사형선고를 받는다. 그러나 사형 집행 전 황제의 특별 사면으로 4년의 시베리아 유형생활과 4년간 군생활을 하게 된다. 


만약 내가 죽지 않는다면, 만약 산다면 나의 삶은 끊임 없는, 영원처럼 느껴지며 1분이 백년과 같으리라, 만약 내가 살아남는다면 인생의 단 1초를 소홀히 하지 않을 텐데..


 독선적인 성격으로 거의 모든 그룹에서 왕따를 당했다. 그리고 4년간의 형이 끝나기 무섭게 글을 쓰기 시작했다. 사형집행의 강렬한 순간 덕분인지 시간의 소중함을 깨닫고 쉬지 않고 글을 쓴걸로도 유명하다. (그래서인지 글에 집요한 무언가가 느껴졌다.)


 도스토예프스키는 가난, 간질발작, 사형선고, 옥살이, 군생활, 도박중독이라는 파란만장한 경험을 해왔다. 그의 소설에는 그런 경험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그는 모더니즘, 실존주의, 심리학, 철학, 신학 등 다양한 영역의 학문에 엄청난 영향을 주었다고 한다. 사르트르, 카뮈, 헤밍웨이, 토마스만, 제임스조이스, 카프카와 같은 작가들 뿐만 아니라 니체, 프로이트, 아인슈타인 같은 학자들까지도 영향을 줄 만큼 파급력이 강한 작가였다. 




#죄와 벌은?

 1866년 발표된 작가의 첫 번째 장편 소설이다. 도스토예프스키는 퇴고를 하지않기로 유명한 작가라고 한다. 하지만 이 작품은 퇴고를 거친 거의 유일한 작품이다. 언제나 도박빚에 쫓겨 돈을 마련하기 위해 최대한 많은 길고 빠른 작품들은 내놓았는데 <죄와 벌>의 경우에는 다른작품의 선인세를 받았기 때문에 여유가 있었다고 한다. 1인칭 시점으로 작성되었다가 맘에들지 않아 전부 불태우고 새로 작성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소설은 주인공 라스콜리니코프의 범죄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진행되는데 범죄를 저지르기전 범죄를 저지르면서, 그리고 범죄 이후의 심리묘사가 엄청나게 사실적이다. 




#죄와 벌 줄거리

 가난한 대학생인 라스콜리니코프. 학교에 다닐 학비와 방세, 식비, 모든 금전적 여유를 잃고 방안에만 틀어박혀 온갖 망상만 하고 있다. 그는 어머니와 동생이 시골에 부터 종종 돈을 붙여 주는 것으로 생활하지만 결국 생활고를 이기지 못하고 모든 것을 내려 놓은듯 하다. 




 전당포에 자신의 귀중품들을 저당받아 맡기며 생활해 온 그는 어느날 부터 한가지 생각에 빠져 그 일을 수행하기 위한 적절한 시기를 노리고 있다. 그것은 바로 악랄한 전당포 주인 노파 알료나 이바노브나를 죽이기로 마음먹은 것. 라스콜리니코프는 사회적으로 악행을 저지르는 노파의 모습을 보며 정의(살인)를 행하기로 마음먹는다. 




 라스콜리니코프는 위험한 사상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일반적인 사람이 아닌 비상한 지성을 가진 우월한 인물은 악인을 처단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는 사상을 믿고 있는데 스스로를 그 우월한 사람의 범주로 생각한다. 하지만 자신이 모든 법망을 초월한 그런 권리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확신하지는 못하는데 어느날 마을에서 어떤 계시를 받 듯 한가지 소식을 듣게 된다. 바로 노파와 단둘이 사는 그녀의 여동생 리자베타 이바노브나가 저녁 7시에 외출을 한다는 사실. 


 라스콜리니코프는 그것을 신의 계시 같은 것으로 인식하고 범죄를 실행하기로 마음 먹게 된다. 다음날 7시 갑작스러운 실행에 당황한 그는 문을 잠그지 않는 실수를 하며 악랄한 노파를 살해하는 장면을 그녀의 동생에게 들키게 된다. 우발적으로 노파에게 학대당하던 무고한 사촌동생 까지 살해한 라스콜리니코프는 자신의 실수에 자기혐오와 죄책감을 느끼게 된다. 




#죄와 벌 마치며

  제목만 봤을땐 죄에 대한 죄책감과 처벌을 받는 단순한 권선징악을 다루는 소설로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보다는 좀 더 높은 차원의 철학적 고민을 던져주는 이야기다.


 처음 주인공이 살인을 저지르고 정신적으로 고통스러워하는 장면에서 뭔가 의아함을 느꼈다. 라스콜리니코프는 살인에 대한 죄책감을 느끼는게 아니라 무고한 인물을 죽인 행위에 대한 자책과 죄책감을 느낀다. 의아했다. 좀 더 읽어보니 그 이유를 알았다. 그는 오만했다. 자신의 뛰어남이 범인을 넘어선 범주라고 생각했고 그 이론에 심취했다. 그런 그에게 노파를 죽인건 아무런 상관없었지만 그녀의 동생을 죽인건 치명적인 실수였던 것이다. 과연 그마저도 비범인인 자신에게는 상관없는 문제인지에 대해 고민한다. 


 그는 젊고 패기 넘친다. 자신만의 이론에 빠져 사회와 관계를 등지고 독단적으로 살아왔다. 그래서인지 스스로를 나폴레옹과 같은 초인처럼 생각하며 악인을 처단할 권리가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무고한 인물을 죽였다는 사실에 스스로가 초인이 아닐 수도 있다는 의문을 느끼고 자기혐오에 빠져 신경증에 걸리게 된다.


 소설에서는 초인주의, 공리주의 그리고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 자기합리화를 하는 것의 위험성을 경고한다. 수 많은 등장인물들은 그 경고를 무시하고 선을 넘게 되는데 그것은 결국 스스로를 파멸로 이끈다.

 



 주인공이 점점 심적으로 미쳐가면서 새로운 인물들이 등장한다. 이야기가 진행됨에 따라 전혀 새로운 인물들이 한명한명 등장하는 형식은 마치 연극을 보는 듯한 착각에 빠지게 만들기도 했다. 


 인물들의 심리묘사가 대단히 뛰어난데, 읽으면서 도스토예프스키가 실제로 살인을 해본게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주인공이 살인을 저지르고 도망치고 고뇌하는 독백, 자신을 의심하는 예심판사와의 대담은 치열한 두뇌싸움을 하는 장면은 현대 범죄스릴러 장르소설이라고 해도 믿을 만큼 긴박하고, 치밀했다. 



 도시에 만연하는 가난과 빈부격차, 만연하는 질병, 도박을 하듯 충동적으로 살아가는 인물들은 그 시대 러시아 제국의 격동기를 잘 표현한다. 


 <죄와 벌> 길지만 그렇게 어려운 소설은 아니다. 몰입도 있는 소설로 두께에 비해 쉽게쉽게 읽을 수 있다. 다가오는 연휴에 <죄와 벌>에서 라스콜리니코프의 살인사건에 얽힌 다양하고 복잡한 이야기의 결말을 확인하는 건 어떨까. 


끗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