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용수 감독을 보내며 - 선수와 감독 경력 화려한 경력의 그는 20년. 코로나 19로 리그 개최는 중단되었다. 급작스러운 휴식기에 부상선수가 많던 서울은 한숨 돌리나 했으나, 재개된 리그에서 그들의 모습은 전년도 3위라고 하기엔 엉망이었다. 최용수 감독이 20시즌 하고자 했던 셰필드식 3백은 실패한듯 보였고, 5연패의 수렁에까지 빠지게 된다. 주축 수비수인 황현수의 이탈과 주요 핵심 선수들의 에이징커브, 공격수로 성공적으로 자리잡은 박동진의 입대, 고액 임대생 페시치의 불만이 맞물리면서 팀 운영에 어려움을 겪는다. 최용수 감독은 눈밖에 난 선수는 쓰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있었는데 리그 초반 ㅇㅇㅇ은 왜안쓰냐 라는 비판에 ㅇㅇㅇ이 나오면 엉망진창인 모습을 보여주며 안쓰는 이유를 알게 했다. 문제는 최용수 감..
몰랐지만. 경외감을 느껴야할 스포츠 스타가 있다. 그는 화려한 해외리그 경력도 없고 예능에 자주 등장하지도 않지만 한국 축구계에서 그의 이름을 빼 놓아선 안된다. 아시아의 독수리 최용수 아시아의 독수리. 내 기억속의 최초의 최용수는 02년 월드컵예선의 모습이다. 대 미국전그의 독수리 슛은 머릿속에 각인 되었다. 골대 앞 1미터 에서 골을 놓친 공격수. 최용수는 '그건 나도 넣겠다'라는 온갖 조롱을 받으며 월드컵에서 모습을 더 이상 볼 수 없었다. 연대 출신인 최용수 선수의 볼을 뺏기위해 연고전 당시 '고대생 전체가 달려 들어도 역부족이 었다' 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어 아쉬움이 더 컸다. 최용수 감독 시대 내가 한창 상암에 다닐 때는 이미 최용수 감독의 시대 였다. 선수시절에는 축구에 큰 관심이 없어..
#나의 리버풀 리버풀이 30년만에 우승을 차지했다. 중학교 시절일까. 케이블 티비가 보급되기전 플스가 있던 친구집에서 우연히 축구경기 영상을 봤다. 엄청 왜소하고 엣되보이는 영국인이 긴 롱패스를 가볍게 받아 수비수를 가볍게 제치고 반대편 포스트를 노린 슛으로 골망을 흔들었다. 마이클 오웬이었다. 지금은 오언으로 불리기도 하지만 그땐 오웬이였다. 자기보다 두배는 커보이는 거구의 선수들 사이에서 소년같은 몸집과 얼굴로 상대팀 선수를 절망에 빠뜨리던 '원더 보이'를 마주하고 리버풀 팬이 되었다. 내 콥의 역사는 그때 부터였다. 당시에는 위닝일레븐이 유행하면서 누구나 자신의 해외리그팀이 하나씩 있었다. 영국에는 아스날 이탈리아에는 유벤투스 라던가, 국가별로 있는 경우도 있고 세리에A, 라리라, EPL을 두고 어..
1. 19년 12월 번리전에서 80M 질주 후 내려 꽂은 손흥민의 슛. 모든 축구팬들의 가슴을 설레게 했던 장면입니다. 아직도 그 믿기지 않는 순간이 머릿속에서 잊혀지지 않습니다. 그런 그의 슛이 제 마음에만 들어온 것은 아닌가 봅니다. 런던사람들의 마음속에도 한골 씩 들어갔는데요. '런던 풋볼 어워드'에서 올해의 골로 손흥민 선수의 이 멋진 슛이 선정되었다는 희소식 입니다. 2.'런던 풋볼 어워드'는 매년 런던 지역의 축구선수 중 뛰어난 활약이나 봉사를 한 인물들에게 수상하는 런던지역의 대표 시상식입니다. 이 시상식은 자선 단체 윌로우 파운데이션 (Willow Foundation)에 기부금을 전액 후원해 호평을 받고 있는데요, 윌로우 파운데이션은 16세에서 40세 사이 불치병을 앓고 있는 환자가 갖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