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문학 추천 스페인 문학 추천 우나미노 [안개]

오랜만에 독서를 했다! 이웃 블로거님의 추천을 받아서 아주 오랜만에 읽기 시작한 책은 바로 스페인 작가 우나미노의 [안개]다.

제4의 벽 소설

줄거리는 크게 뭐가 없지만 내용적인 측면에서 시사하는 바가 꽤나 있어 보인다. 일단 ‘데드풀’ 처럼 제4의 벽을 넘나드는 소설이다. 갑자기 내용이 급 발진하더니, 주인공이 작가를 찾아간다. 그리고 독자에게도 말을 거는 것처럼 군다. 고전문학에서는 처음 접해보는데 18세기 연극에서 관객과 소통하는 방식으로 발전해왔다고 한다.

스페인문학은 돈키호테 정도나 읽었을까, 그 마저도 다 읽진 못 했던 것 같다.

안개는 일반적인 소설과는 느낌이 다르다. 서문부터 무명작가가 유명작가에게 작성하였고, 서문에 대한 항변으로 시작한다. 우나무노는 자신의 소설(Novela)을 ‘소셜(Nivola)’이라고 표현하며 기존 소설과는 다른 방식이라고 수 차례 이야기한다. 제목도 안개(Niebla/nie·bla)인걸 보면 말 장난을 하고 있는 걸 수도 있겠다.

고전소설 안개 줄거리

작가의 말마따나 소설은 일반적이진 않다. 개연성도 딱히 없고 이상한 블랙유머와, 현대와는 다른 가치관들이 줄줄 나온다. 소설이 안개속에 있는 것 같다. 주인공인 아우구스토는 어머니에게 상속받은 재산으로 살아가는 젊은 청년이다. 대를이어 집에서 일을 해주고 있는 사용인 두명이 있다. 어느날 그는 길을 걷다가 (할 일 없이 정말 걷기 위해 걷는다) 우연히 마주친 여성 에우헤니아를 마주치고는 사랑에 빠진다.

에우헤니아는 피아노 선생을 하고 있고, 가난하여 집이 저당잡혀 있으며 고모집에 얹혀 살고 있다. 그리고 백수날건달 남친과 열애중이었다. 주인공 아우구스토는 갑작스럽게 찾아온 사랑의 감정에 빠져 길을 잃게 된다.

그녀의 집앞에서 기다리기도하고, 구애를 하기도 하지만 정작 에우헤니아는 아우구스토를 이용하여 남친을 일하게 만들려는 도구로 사용한다 아우구스토는 에우헤니아를 사랑하지만, 동시에 마주치는 모든 여성을 사랑하게 된다.

갑자기 찾아온 사랑이란 감정 덕분에 인생이 안개에 빠져버린 아우구스토. 이래저래 방황하며 친구도 만나고 다른여성과 사랑에 빠지기도 하면서, 에우헤니아에 대한 사랑에 대해 고민하고 애쓴다.

“아버지가 된다는 것은 미쳤거나 바보가 아닌 다음에야 인간에게 있는 가장 무서운 면을 일깨워 주는 일이야. 책임감! 나는 인류의 이 영원한 유산을 내 아들에게 건네주는 거야. 부성애의 신비를 명상하다 보면 미치게 되는 수 가 있어. 그런데 대다수의 아버지들이 미치지 않는다면 그 것은 그들이 바보거나···.. 아니면 아버지가 아니기 때문이지. 그러니까 아우구스토, 기뻐하란 말이야. 그 일에 실패 함으로써 자네는 아버지가 되는 것을 피할 수 있었던 거 야. 나는 자네에게 결혼하라고 말했지만 아버지가 되라고 한 것은 아니었어. 결혼은 심리적인… 실험이야. 부성에는 병리적인…. 실험이고.”

이런 저런 사건들을 겪으며 죽기로 결심한 아우구스토는 마지막으로 유명한 작가인 우나무노를 찾아간다. 우나무노는 자살을 결심한 아우구스토에게 내 창작물이 왜 멋대로 자살하냐며 나무라고, 아우구스토는 내가 허구면 너는?을 시전하며 존재론적 질문을 던진다. 이 부분에서 소설의 기본적인 구성에서 벗어나 작가가 말하는 소셜이 시작된다.

소셜 안개를 읽고

등장인물의 사유와 감정, 생각이 중심이 되어 전개된다. 굵직한 사건으로 진행되기보다는 주인공과 주변인물들의 대화와 감정으로 전개되기 때문에 읽으면서도 안개에 빠진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소설로써 재밌냐 하면 재밌다고는 말하기 어려울 것 같고 오히려 철학적인 측면에서는 재미가 꽤 있었다. 당시 여성, 남성, 정부, 국가에 대한 우나무노의 사상 같은 걸 엿 볼 수 있다.

우나무노는 스테레오타입-분야별로 고정관념을 가진 대표적인 등장인물들을 배치하여 안개속을 헤매는 아우구스토를 이리저리 휘두르는 것 같았다.

안개속을 헤매던 아우구스토와 작가가 만나며 이야기는 좀 명쾌해진다. 처음엔 우나무노는 아우구스토를 구슬려 그를 다시 이야기속으로 복귀시키려 한다.

“자네 기분을 풀어주려는 거야. 게다가 아까 말한 것처럼 만일 우리 얘기를 듣고 있는 숨어 있는 소셜가가 그것을 재생하기 위해 기록해 두었다면, 소셜의 독자는 비록 한 순간일지라도 자신의 실체를 의심하게 되어 우리와 같이 자신이 단지 소셜적 인물에 지나지 않는다고 믿게 되지.”

이 대화에서 자신의 존재에 대해 소셜과 소셜가에 빗대어 아우구스토를 달래려고 한다. 독자인 내가 아우구스토를 통해 스스로의 존재를 의심하게 되고, 우나무노가 말하는 소셜과 소셜가에 대한 설명을 들었을 때 이성이나 논리가 아닌 운명과 신이라는 초월적인 해결책으로 ‘뭉개듯이’ 설득하려는 것처럼 느껴졌다.

결국 모두가 죽는다. 남는 것은 물질적인 것 ?

모두가, 모두가 죽을 것입니다. 여러분과 마찬가지로 소설적 허구의 실체인 나, 아우구스토 페레스는 여러분들에게 말합니다. 나의 창조자 돈 미겔 당신도 하나의 소셜적 실체에 지나지 않으며 당신의 독자들도 당신의 희생물인 나. 아우구스토 페레스와 똑같이 소셜적 실체일 뿐입니다…

결국 아우구스토가 죽기로 결심한 것을 고집하자 분노한 우나무노는 네가 죽기 전에 내가 죽일거야를 시전하며 자신의 작품 속 캐릭터와 언쟁을 벌인다. 결국 아우구스토는 죽게된다.

소셜에서는 모두가 어딘가 엇나간 사상 또는 현실과는 벗어나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소셜은 일반적인 소설과 다르게 소셜적 존재들로 작가 우나무노가 구성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두가 소셜적 존재이게 된다면 소셜의 전개가 되지 않기 때문에 아우구스토의 사용인인 ‘리두비나’와 강아지 오르페오, 세탁소 점원인 로사리오는 소셜에서 철학하지 않는 사람들로 만들어 이야기를 전개한다. 리두비나는(그녀도 소셜적 존재이겠지만) 거의 유일하게 이성적이면서 하루 하루를 살아가는 소시민으로, 아우구스토의 개똥철학 이야기를 받아주는 다른 인물들과 다르게 ‘밥을 먹으라는 니’, ‘좋은 사람을 만나야 한다’, ‘그런 건 잘 모른다 일단 자라’는 식의 소설의 인물(살아가는 인간)로써 역할에 충실한다.

머리속이 항상 안개에 빠져있기 때문에 아우구스토가 현실로 나오기 위해서는 물리적인 접촉이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 그는 스킨십을 갈구한다. 자신에게 호감이 있는 세탁소 여직원 로사리오를 무릎에 앉혀 희롱하므로써 아우구스토는 잠시나마 망상에서 벗어나 현실로 돌아온다. 아우구스토는 아우에니아라는 망상을 쫓아 자신을 잃게 된다. 하지만 육체(물리적인)를 활용하여 살아있는 인간으로 실존하게 한다. 로사리오는 소셜에서 철학하지 않는 사람, ‘리두비나’와 유사하면서 다른 역할을 보여준다.

그가 중간에 입양하는 강아지 오르페오 또한 그를 현실로 불러오는 물리적 장치다. 혀로 핥거나, 부드러운 털로 아우구스토를 진정시키는 역할을 하게 되는데, 소설의 말미에는 오르페오의 입장에서 한 챕터가 진행된다. 여기서 오르페오는 아우구스토의 죽음과 인간의 생을 관조하는 또 다른 소셜적 존재로 변모한다.

소셜 속 인물들이 모두 자신의 주장을 펼치는 철학가들이라면 오르페오는 보다 동물적이고 직관적인 관점에서 그들 모두의 이론을 무시하는 비판적 절대자의 논지를 펼친다.

견유주의라고 부른다면 위선을 인간주의라고 불러야 할 것이다. 인간은 우리를 위선자로 만들려고 했다. 말하 자면 우리 개들을 희극배우와 광대로 만들려고 했다. 우리 개들은 황소나 말처럼 강제로 가축이 되고 인간에게 굴복 한 것이 아니라 쌍무계약으로 사냥을 수행하기 위해서 자 유의사에 따라 인간과 결합했었다. 우리들은 사냥감을 찾 아내었고 우리의 몫을 받았다. 이렇게 사회적인 계약에 의 해서 우리의 공동 작업이 탄생했다.


그런데 인간은 우리를 광대, 원숭이 그리고 현명한 개로 만들면서 우리의 명예를 더럽히고 모욕하는 걸로 보답했다! 현명한 개란 광대 짓을 연기하도록 교육을 받은 개를 말하는데, 인간들은 개들에게 옷을 입히고 뒷발로 서게 한 다음 수치스럽게 걷도록 조련한다. 이름하여 현명한 개들! 이렇게 광대 짓을 연기하고 두 발로 걸을 수 있는 것을 인간들은 지혜라고 부른다!

우나무노의 소셜은 일단 나에게는 성공한 것 같다. 수 많은 철학들과 논리와 전개가 엉성한 이야기 사이에서, 피할 수 없는 사실이자 유일한 진리, 사실은 결국 죽는다는 사실이다.

역설적으로 소셜의 허구 존재인 아우구스토와 소셜가인 우나무노는 지금 내 현실, 내 문장속에서에 존재하고 있다. 그들이 내 소셜속에 한 구절 자리했으니 우나무노의 소설 실험은 대 성공으로 끝났다.

끗-

부식시켜야지. 혼동시켜야 하고. 특히 혼동시키는 게 중요해. 모든 것을 혼동시켜야 돼. 꿈과 현실을 혼동시키고 허구와 현실을 혼동시키며 진실과 거짓을 혼동시켜야 돼.
단 하나의 안개 속에 모든 것을 혼동시켜야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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