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 이브.
누구에겐 설레고 누구에겐 별로인 그날. 부처님은 안그러는데 예수님 생일은 전날부터 다들 난리가 난다. 나는 지금 투썸플레이스라는 곳에서 케익이 미친듯이 팔려가는걸 등뒤로 들으며 이 일기를 쓰는데 신나는 크리스마스 캐롤과 분위기와는 다르게 기분은 우중충하다.
시간을 돌려 오늘 아침으로 돌아가면 크리스마스 이브가 주는 낭만과 설렘과 별개로 나는 오늘 휴가를 내고, 그녀에게 줄 선물 구매와 올해 숙원사업(?)이었던 아이폰 배터리 교체를 하기로 결심했다.
#프레디무큐리_얼롸잇
8시 30분 나혼자 산다의 프레디 무큐리가 머리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그 춤추는 짤만 봤는데 너무 웃겨서 나혼자 산다를 잠깐 보려고 켰다. 물론 전현무 부분만 보고 싶었는데 정려원이 의외로? 재미있었다 배우병 걸렸을 줄 알았는데 안그래서 놀랐다. 나혼자산다를 스킵해가면서 봤다. 무큐리는 역시 다시 봐도 재미있었다. 무큐리의 바보같은 사람 좋은 미소에 ‘얼라잇’ 자막을 보고 혼자 빵터졌다.
#아이폰_배터리교체
문득 아이폰 배터리교체가 요즘 사람이 몰린다는 이야기가 떠올라 슬슬 나가야겠다고 생각했다.
9시 30분 수유역 대우전자서비스 동부지점에 도착했다.
들어서자 마자 불안감이 엄습했다. 이전에도 방문한적 있는 이곳은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들어 올 수 있는 공간이 아니었다. 자동문 앞부터 길게 늘어선 사람들이 보이고 내눈에 이곳이 금요일 홍대 클럽인것처럼 핫하게 느껴졌다. 오픈시간이 고작 30분 지났을 뿐인데 갑자기 무큐리가 원망스러웠다.
사람들을 비집고 줄의 꼬리를 찾아 나는 기다렸다. 그리고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10시 드디어 아이패드를 활용한 접수를 할 수 있었다. 접수대는 총 3대의 아이패드가 있었는데 좌우 두명보다 빨리 하기위해 혼신의 힘을 다했다.
그래서 받은 대기번호 70번
친구와 카톡으로 여러가지 정보를 알아낼 수 있었다. 1명의 기사가 교체할 때 소요되는 시간 약 20분. 이곳에 보이는 애플전담 서비스 기사님은 약 5명. 그렇다면 1시간에 15명을 해결할 수 있겠구나. 싶었다. 중간중간 예약서비스로 끼고 들어오는 사람을 감안하여 내 차례가 오려면 최소 4시간은 기다려야 했던 것이다.
그래서 접수를 마치고 (핸드폰을 맡긴건 아니다. 핸드폰을 맡길 수 있는 순서를 정한것.) 그녀에게 크리스마스 선물로 주기위해 구매한 책을 받으러 광화문 교보문고에 가기로 했다. 종로에 왕복으로 다녀오면 딱 맞을 시간이었다.
오전 11시
이때까지만 해도 뭔가 딱딱 맞아떨어졌다. 지하철은 바로바로 왔으며 환승은 막힘이 없었고 항상 망가져 있던 에스컬레이터도 정상 작동하고 있었다.
광화문에 도착하여 바로드림 서비스(미리 책을 주문하면 한시간 뒤에 지점에서 책을 받을 수 있는 서비스)를 이용했다. 카톡이나 문자로 온 주문번호를 달라는데 나는 받은적이 없어서 굉장히 당황했다. 그래서 온게 없다 다른방법은 없냐고 물었더니 이름과 핸드폰번호로 찾아주었다. 그런데 016번호는 사용하시는게 아니냐고 묻길래, 아 그건 제 예전번호입니다. 하고 이야기 했다. 홈페이지 휴대폰번호 갱신이 안되어 있었나보다. 그만큼 교보에 오래전에 가입했나보다.
어쨋든 받은 책은 산티아고 길에서 나를 만나다 라는 책이다. 그녀는 예전부터 산티아고 순례길에 가고 싶다고 이야기 했다. 이번에 god가 출연한 같이걸을까 이후로 부쩍 순례길 이야기를 많이 했다. 그리고 옥수수에 올라와 있는 나의 산티아고라는 영화를 추천해줬다. 나는 파울로 코엘료의 소설로 익숙해서 막연한 동경은 있었지만 지금처럼 영상을 통해 순례길을 접하진 못했는데 영화를 보니 충분히 걸을만한 가치가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다. 책도 좋다는 이야기에 크리스마스 선물로 좋겠다 싶었다.
그리고 얼마전 귀걸이를 이야기 했던게 생각나서 종로3가 보석거리 아는 형이 운영하는 '민트주얼리' (종로3가 1번출구)에 가서 귀걸이를 하나 삿다. 비어있는 금색 하트에 뭔가 들어가있는 디자인이었는데 맘에 들라나 모르겠다. 귀걸이를 꽤 선물해줬던거 같은데 사줄때마다 그게 그거같아서 애매하다. (나중에 보유한 귀걸이 사진을 좀 보내달라고 해야겠다 다른 스타일로 사주면 좋으니까) 하여간 귀걸이까지 사고 다시 수유로 돌아왔다.
12:30
집으로 가서 점심을 먹기전 대우전자서비스센터에 다시 슬쩍 들려 내 이름이 어디있나 확인해 봤다. 12시 40분 무렵 내번호는 36번에 와있었다. 거의 정확하게 절반 정도 온것이다. 나는 어느정도 예측했지만 너무 정확하게 맞아 떨어져서 5시간 대기해야된다는 공포감이 다가왔다. 다시 집으로 돌아가 점심을 간단하게 먹고 서비스센터에서 시간을 때울 것들을 가지고 돌아왔다.
13:30
내번호는 왠지 모르게 26번대에 체류하고 있었다. 시간이 멈춘것만 같았다. 가지고 갔던 이석원 작가의 산문집 '우리가 보낸 가장 긴 밤'을 다 읽었다. 이석원 작가의 글 중 유독 부모님과 관련된 글에서 많은 공감을 느꼈다. 부모님께 잘해야지 훌쩍.
15:30
책도 다읽었고 핸드폰도 배터리가 간당간당해보인다. 어차피 곧 교체될 핸드폰 배터리를 교체하는게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그냥 탕진하기 위해 웹툰을 보기 시작한다. 언젠가 누군가 홍차리브레 라는 네이버 웹툰을 추천해준적이 있는데 소소하니 재미있다.
다봤다.
16:10
드디어 내이름 불렀다 이제 이 지겨운 싸움도 30분 남았구나 하고 생각했다. 뭔가 접수대의 직원은 나보다 10살은 어려보이는 남자분이었다. 그리고 눈에는 왜 인지 몰라도 눈물이 그렁그렁 한 것 같았다.
<직원의 표정>
그래서 나는 시키는대로 고분고분 나의 아이폰 찾기를 해제 하고 비밀번호를 해제하고 접수를 진행하는데, 맡기시고 8시에서 8시 30분 사이에 오라고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닌가.
맙소사 20분이 접수에 걸리는 시간이었단 말인가! 나는 접수부터 교체까지 걸리는 시간이 20분인줄 알았는데 내가 뜨악하는 표정을 짓자. 그 점원은 그렁그렁한 눈으로 어쩔 수 없다며 한풀이를 했다.
지금은 저 뒤에서 세명이 고치고 앞에서 두명이 접수받고 또 몇명이 출고하고를 하고 있다. 접수가 마감되서 이제 전부 뒤 방으로 들어가서 수리를 할거라고 이야길 했다. 그리고 오늘 자기가 생각하기엔 퇴근을 못할 거 같다고 이야기 했다. 이브인데 짠했다. 그무렵 대기번호는 131번을 넘어가고 있었다. 이게 대기번호라는게 누적되는게 아니고 실시간으로 변경 되는 것이었는데 고려해보면 도대체 얼마나 많이 왔을지 상상도 안된다.
애플주식을 좀 사둬야겠다.
직원이 눈물이 그렁그렁하고 나도 눈물이 그렁그렁해졌다. 그녀를 만나서 책과 귀걸이를 주고 오늘도 힘들게 일했으니까 집에 데려다줘야지 하는 생각에 한껏 들떠있었는데... 여차저차 집으로가서 노트북으로 그녀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데려다 줄테니 보문역으로 오라고 이야길 했다. 보문역에는 내가 거의 언제든 가용가능한 차가 있었는데 보통은 차를 빼서 그녀가 있는 곳으로 가려고 했지만 핸드폰 배터리 교체가 이렇게 늦게 끝날줄 몰랐던 것이다. 아 아직 끝난게 아니지.
#그녀와 짧은만남
17:40
그녀는 보문역에서 만나 차로 갔다. 차에 타서 네비를 키는데 네비가 안켜졌다. 나는 네비가 없으면 동네 슈퍼도 못가는 사람이라. 차에 네비가 없다는건 내가 어디도 못간다는걸 뜻하고 그건 그녀를 데려다 주면 나는 집으로 돌아올 수 없다는 것을 뜻했다.
그래서 난색을 표하고 있을때 그녀는 배가고프다고 했다. 배가 고프면 밥을 먹어야 하고 밥을 먹고 그녀를 데려다주고 핸드폰을 찾으러 가면 너무 늦는다는 결론에 다달았다. 배가 고프다는데 굶길순 없으니까 우선 차를 몰아 근처 초밥집에 갔다. 그때부터 뭔가 나는 기분이 굉장히 울적해졌다. 초밥은 어떤 맛이었는지 기억이 안난다. 모듬과 특선을 시켰는데 그냥저냥 했던거 같다. 초밥은 꽤나 비싼 음식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초밥을 먹고 그녀는 그냥 근처 1호선에 내려달라고 했다. 그리고 핸드폰 찾으러 가라고 말했다. 속상했다. 그래도 크리스마스선물이라고 산 책과 귀걸이를 전달해 줬다. 맘에들어야 할텐데 1정거장인 동묘역에 가는데 굉장히 차가 막혔다. 차가 정-말 굉장히 막혔다. 내 시간 그녀의 시간이 덧없이 날아감. 그리고 수중에 핸드폰이 없다는 사실에 기가 막혔다.
18:30
그녀가 탈출에 성공했다. 긴 교통체증이 지겨웠는지 동묘앞 역으로 총총총 들어가는 그녀의 뒷모습을 보니 토끼같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게 뭐람. 나의 낭만의 크리스마스이브가 초밥먹고 지하로 사라지다니.
이제 문제는 이 상습 정체 구역에서 네비게이션 없이 돌아가는 것이었다. 눈(네비)없이 운전할 생각을 하니 더 우울해졌다. 차를 버리고 도망가고 싶었다. 신설동 방향으로 좌회전이 안되서 어쩔 수 없이 동대문을 지나 이화동쪽으로 가서 유턴을 했다. 차가 굉장히 막혔다.
19:30
다시 주차에 성공했다. 약 1시간 걸린 2km였던거 같다. 크리스마스이브라 차가 많았다. 만약 데려다 주었다면 아직도 내부순환도로였을거라 생각된다. 후다닥 핸드폰을 찾으러 가야겠다.
20:00
대우전자 서비스센터에 도착했다. 접수증을 건내줬다. 그 의문의 작업이 벌어지고 있는 뒷방에 접수직원이 들어갔다 한참 뒤 나온 직원의 손에는 접수증만 두개 들려있었다. 68**고객님 1시간뒤에 끝날거 같아요.
뜨악...
9시 30분 부터 진행된 핸드폰 배터리 교체가 12시간을 넘어가려고 하고 있었다.
놀라운건 아직도 핸드폰을 맡기지 못한 접수대기자 40명 ㅠㅠㅠ
그래서 나는 집에가면 도저히 다시 나올 자신이 없어서 근처 카페에 나와서 카톡용으로 들고 나온 노트북을 펴들고 이 일기를 분노에 차서 쓴다.
글로 마구 써댔더니 감정이 좀 풀리는 거 같기도 하다.
이제 1시간이 되어가는데 또 가면 아직 안되었다고 할거 같아서 ㅠㅠ 방문하기 무섭고 대우전자서비스 직원들이 그렁그렁한 눈망울이 자꾸 떠올라서 속상하다.
나만큼 속상하겠지.
다들 메리크리스마스.
끗-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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