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고 이별에 대해 쓰려고 했다.
오늘은 맥주 한 잔 했기 때문에 그 언제를 오늘로 정했다.
작년 3월 이별했다. 유난히 날이 좋았다. 오전에는 비가 왔는데, 헤어지기로 하고 나서는 청명한 하늘이 야속했다.
싸움도 없고, 집착도 없던 무던한 이별이었다. 그만큼 서로에게 지쳤던것 같다. 총 연애기간 약 5년, 잘 맞지 않음을 알면서도 서로 얼마나 무던히도 노력했던가. 애쓴 우리에게 박수를.
이별은 죽음의 5단계와 같은 단계를 순환 한다고 한다.
이별의 5단계는 1. 부정 2. 분노 3.타협 4.우울 5.수용,
다시 1. 부정 정말 맞는 말이다.
이 글을 쓰는 지금은 아마도 수용의 단계일 것이다. 원래 이 주기가 하루에 두 바퀴씩 돌정도로 짧았는데, 이제는 점점 무뎌지기 때문일까. 주기가 길어진다. 그만큼 화나있는 시간도 길고, 우울한 시간도 길어지기 때문에 그닥 좋은거 같진 않다. 다 쓰고 나면 다시 부정의 상태에 올지도 모르겠다.
긴 연애를 끝내고 얻은 몇가지 교훈이 있다.
우선 최선을 다하자,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했음에도 이별해보니 아쉬움이 많이 남았다. 할 만큼 했다고 생각했는데, 돌아보니 부족했다고도 느껴진다. 정말 최선을 다한 것 일까.
두번째, 한 사람의 휴대폰에만 사진을 너무 많이 남기지 말자, 5년동안 한장씩 찍었다고 해도 사진은 1800장을 겨우 넘긴다. 퇴근길에 내가 삭제한 사진 2838장. 핸드폰은 잔인하게 이 숫자를 너무나 정확히 알려주었다. 청춘의 한켠이 몽땅 지워지는 거 같아 슬픔 이상의 감정이 올라왔다.
세번째, 기념일을 비밀번호로 저장해두지 말자, 온갖 비밀번호가 생일이거나, 기념일이라 은행에 들어가거나, 주식 거래를 하거나, 카카오톡에 로그인하거나 할때 가슴을 저민다. 이걸 바꾸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이렇게 긴 연애는 세 가지 뜻 깊은 교훈을 남기고, 짧은 이별로 끝이 났다. 돌아보면 아쉽다. 왜 우리가 헤어지는데 5년이란 시간이나 필요했을까.
이전에 헤어졌을 때는 심드렁했다. 그러나 이번엔 실감하는 순간 눈물이 멈추질 않았다. 보낼땐 씩씩하게 보냈는데, 막상 다리가 다 풀려서 터덜터덜 걸어가는 뒷모습을 지켜보고 있자니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한 번 쏟아진 눈물을 멈출 생각이 없어보였다. 지하철에서 누군가 죽은거마냥 꺼이꺼이 눈물을 흘렸는데, 나이먹고 참 창피했다.
울고나니 후련해 진것도 있다. 하지만 남아있는 마음엔 아쉬움과 속상함이 큰 듯 했다. 돌아오는 길 날씨가 너무 좋았다. 더 슬펐다.
이제는 그녀가 ‘잘 맞는 좋은 사람을 만나 행복했으면 좋겠다.’ 라는 오지랖도 부릴 만큼 여유가 생겼다. 사진촬영과, 수영을 했다. 하고 싶다고 생각만 하던걸 과감하게 시도한다.
앞으로 누굴 만나게 될지 모르겠지만 나는 똑같을 것 같다. 알게 모르게 사람을 질리게 하는 것도, 내 기준에 맞지 않으면 신랄하게 상대를 비판하는 것도, 무작정 진심을 전하는 것도. 맞다고 생각하는 것에 대해서는 답없이 고집 부리는 것도. 나는 좋은 면도 안 좋은 면도 한결 같다. 연애에 있어서는 도저히 성장하기가 어렵다. 잘 하려고 하면 할수록 어려운거 같기도 하고.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았던 연애. 그리고 찰나였던 이별. 아쉬움도 많지만 이제는 괜찮다. 좋았었다. 앞으로도 잘 되었으면 좋겠다. 그동안 쌓였던 감정들, 미안함, 미움, 서운함, 죄책감 다 잊고, 좋았던 것만 가지고 나아가기로 결심했다.
끗-
+ 이 글은 꽤 오래전에 작성했다. 작성한 당시에도 캐묵은 감정이 있어서 업로드하지 못했다. 지금은 헤어진지 1년이 훌쩍 지났고 시간은 정말 빠르다는 것만 실감할 수 있다. 감정은 무뎌지고 시간은 흐른다. 게시 하지말까 고민하다가 이제는 정말 보내주기로 결심해서 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