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볕이 너무 쨍했다. 날씨가 너무 좋았다. '너무'라는 말은 부정적인 표현을 서술하기 위한 부사로 사용되었다. 과하단 뜻인데 이제는 긍정의 표현에도 사용된다. 앞서 사용한 너무에는 부정적인 의미가 가득이다.
연속된 주말출근과 야근으로 인해 지친 나는 내일 만큼은 기필코 상처입은 늑대새끼마냥 방구석에 웅크리고 앉아 패드를 잡고 어쌔신크리드 오딧세이 엔딩을 보겠노라 다짐했다.
아침 따스한 햇살에 눈을 떳다. 요즘 같은 날엔 따스한 햇살이고 뭐고 '다 망했으면 좋겠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날이 좋을수록 더 우울했다.
창밖으로 햇살이 쏟아지고 새가 지저귀고 나는 부은 두눈을 비비고 일어나 바로 플스를 켰다. 대기 중 상태의 플스는 금방 켜졌다. 어쌔신 크리드 : 오딧세이를 키고 교단원을 찾으려는 찰나, 구름이 걷혔는지 엄청난 빛이 창문을 통해 들어왔다.
창문을 조금 열어 밖을 확인했다. 레티나 모니터를 눈앞에 깔아 놓은 듯 한 쨍- 한 날씨가 보였다. 이런 날이면 보통 여자친구와 만나기로 하지 않았더라도 '날씨 좋다. 나와' 하고 박력있게 부르고 싶은 그런 날씨였다. 하지만 그럴 순 없었다. 주변에 누군가 만날 사람들이 없을까 찾아보았지만 이 날씨에 굳이 동성을 만나고 싶진 않았다.
대충 세수만 하고 모자를 쓰고 카메라를 들고 밖으로 나왔다. 날씨는 방안에서 느꼈던 것 보다 훨씬 좋았다. 지금 생각해보니 나는 하늘 사진 찍는 걸 좋아하는 듯 하다. 강북구는 오래된 동네가 많아 하늘은 온통 전선으로 범벅이었다. 무작정 전선이 없는 곳을 찾아 떠났다.
집에서는 북한산이 보이는데 무작정 그쪽으로 걸어갔다. 걸으면서 이런저런 생각을 했는데 이건 촬영에 대한 글이기 때문에 촬영에 대한 이야기만 쓸 생각이다. (지금까지 일기 수준으로 아무 이야기나 썼다.)
<북한산 인수봉>
본격적인 촬영여행을 떠나기 전 교보에 들러 필름을 삿다. 필름을 살만한 곳이 마땅치 않다. 가격은 6000원, 인터넷에서 3800원에 주문 할 수 있는걸 고려하면 터무니 없는 가격이다.
필름을 하나 산 나는 기세 등등해져서 이곳저곳 기웃거리며 연신 셔터를 눌러 댔다.
<신나서 아무거나 찍었다>
필카는 내가 뭘 어떻게 찍었는지 볼 수 없기 때문에 좋다. 다양한 장점이 있지만 내가 필름 카메라를 좋아하게된 이유는 ‘나는 무조건 잘 찍었으니까 굳이 확인이 필요없지’ 하는 취미 사진가의 이상한 자신감 때문일 것이다. 디지털로는 내 결과물이 바로 나오기 때문에 이런 자신감이 유지되기 쉽지 않다.
하여간 모자 눌러쓰고 연신 셔터를 눌러대며 한없이 걸었다. 전선이 보이지 않는 맑은 하늘을 본건 4.19 묘지에 가서다.
4.19 국립 묘지는 산책코스와 공원을 깨끗하게 구성해 놨다.
이곳에서 연신 셔터를 눌렀다. 제법 찍었을 무렵 다시 집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꽤 멀리 걸어 왔기 때문에 집으로 가는길이 걱정되었다.
그러던 중 한통의 전화가 왔다. 얼마전 지인들에게 도서전 티켓을 나눠줬는데 그 중 한명에게 티켓에 문제가 생겼단 연락이었다. 부랴부랴 계획에도 없던 국제도서전에 가야했다. 집까지 워낙 멀리 나와 버스를 타고 돌아갔다. 씻고 코엑스로 향했다.
도통 되는 일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사람구경도 하고 책도 보고 좋은일이다 라고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도서전에서 일을 보고 관람을 했다. 아는 사람들고 만나고 김영하 작가의 신작도 구매했다. (읽진 못했다) 읽어야 할 책이 3권 밀려있다.
집에 돌아와 하루를 돌아 보았다. 방에서 틀어박혀 게임만 하려고 했는데 어마어마한 활동을 했다. 다음날 아침 일찍 출근해야 해서 부담이 되었다. 하루종일 혼자 돌아 다녔단 생각에 외로움이 엄습했지만 그도 잠시 곧바로 잠에 들었다. 찍은 필름이 어찌 나올지 기대하며 잠들었다.
두번째 롤에 대한 나의 기억. (kodak color 200)
끗-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모든 사진은 Minolta AF-C를 활용하여 촬영했습니다.
댓글과 공감은 큰 힘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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