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어팟을 잃어버렸다. 정신없이 출근하던 길에 집에 놓고 나온줄 알았다. 뭔가 찜찜한 기분이 들었다. 아무리 급하게 나왔다고 해도 평소 지갑, 열쇠, 에어팟은 꼭 챙기는 편이다.
지하철에서 에어팟을 뒤지는데 없었다. 가방에는 엄한 치실만 들어있었다. 집에 있겠거니 하고 하루를 보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찜찜한 기분을 잊기 위해 에어팟을 찾았다. 침구류를 뒤지고, 구석구석 평소 잘 올려놓던 곳도 찾아보았다. 없었다.
잃어버렸구나 생각이 들었다. 나는 물건에 애착이 강한 편이라 한 번 소유한 것은 잘 놓지 못하는데 에어팟은 만족도가 높았던 만큼 잃어버리고 싶지 않았다.
이전에는 토익시험을 보러 갔다가 열쇠를 잃어버린 적이 있었다. 잃어버린 사실을 시험이 끝나고 3시간 뒤 깨달았다. 열쇠보다도 선물 받은 열쇠고리가 신경 쓰여 꼭 찾아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부랴부랴 시험장소까지 역추적했다. 길에 떨어뜨렸을까 싶어 땅만 보고 걸어 걸었다.
시험장소인 고등학교에 들어갔다. 이미 문이 굳게 닫혀있었는데 경비아저씨에게 잠깐 확인만 하고 바로 나오겠다고 연신 머리를 조아려 허락을 받았다. 허겁지겁 4층 계단을 뛰어올라 교실로 갔다. 내가 시험을 치른 책상 위에 내 열쇠는 살포시 올라가 있었다. 누군가 주워놓아 준 듯하다.
이때 기분은 정말 좋았다. 살포시 책상에 올려놔준 어떤 토익수험생에게 대박나길 기원해주었다. (물론 나는 망했다.)
에어팟을 되찾기 위해 우선 나는 전날의 기억을 찾아보았다. 마지막 기억은 수영장이었다. 수영장에 끼고 갔다. 처음엔 수영가방에 넣어서 왔는데 올땐 수영가방이 물로 가득찼었기 때문에 손에 들고 나왔던 것 같다. 들고 나와 나는 편의점에서 평소 마시던 제로콜라를 한잔 마셨는데, 그때 밖에 비가 조금씩 오고 있어서 편의점에서 한캔을 원샷하기 위해 잠깐 탁자에 에어팟을 내려놓은 기억이 있다.
편의점엘 갔다. 당시를 근무했던 아르바이트생에게 전날 에어팟이 들어온 게 있느냐고 물었다. 아르바이트생은 뒤에 분실물이 쌓여있는 곳을 슬쩍 보더니 '없는데요' 라고 무성의하게 대답했다. 나는 CCTV를 볼 수 있느냐고 요청했다. 알바생은 사장님만 비밀번호를 알기 때문에 보여줄 수 없다고 답했다. 나는 사장님은 언제 오시느냐고 되물었고, 그날 새벽 3시에서 8시까지 일한다고 아르바이트생은 답했다. 일단 편의점에선 발견되지 않았다.
다음 분실 의심 지역은 수영장. 수영장으로 갔다. 수영장에서도 분실물은 없었다. 내가 전날 썻던 락커 61번을 사용할 수 있느냐고 물었다. 이미 61번은 나갔다고 했다. 어차피 나는 마지막 시간대라 끝나고 확인해 보기로 하고 수영장에 들어갔다.
수영이 끝나고 61번 락커의 주인이 나올 때까지 기다렸다. 아무리 기다려도 나오지 않자, 카운터를 보시는 분께서 샤워장에 들어가 61번 락커의 주인을 찾아주었다. 락커는 비어있었다. 사실 누가 가져갔어도 진즉 가져갔을 듯하다. 61번 키는 카운터에서도 손에 닿기 좋은 자리에 있어 가장 먼저 나갈 확률이 컸다. 남은 희망은 편의점 CCTV였다.
새벽 3시까지 기다리고자 마음먹었으나 수영을 해서 그런가 순식간에 잠이 쏟아졌다. 다음날 새벽같이 가기로 마음먹고 잠자리에 들었다. 눈앞에 에어팟이 아른거렸다. 다음날, 주말임에도 새벽 6시에 눈이 번쩍 떠졌다. 졸린 눈을 비비고 모자를 하나 눌러쓰고 편의점으로 향했다.
"어서오세요~"
"혹시 사장님 되시나요?"
"누구세요?"(의심의 눈초리)
"아 저 다름이 아니라 제가 2틀밤에 이어폰을 잃어버려서.., 가능하면 CCTV로 제가 끼고 있었나 확인 좀 가능할까요..?? 값이 좀 나가는거라..."
"흐음.. 잠시만요, 시간 아세요?"
"네 10시 17분이요"
잠시 뒤.
"귀에 꽂고 나가셨어요"
"네? 제 귀에요???"
"네"
"잠깐 와보세요"
보여준 화면에는 문을 나서는 내 모습이 떠 있었다. 선명하게 하얀 칫솔 머리가 귓속에 들어가 있는. 그렇다면 에어팟은 편의점에서 집에 가는 길에 흘렀거나 집안 구석 어딘가에 잘 숨겨놨단 이야기다.
후다닥 집으로 들어와 다시 잠을 청하고, 10여 분 뒤 번개에 맞은 것처럼 일어나 서랍을 뒤지기 시작했다. 서랍 속 옷 사이에서 발견된 에어팟, 옷을 갈아입으려고 서랍을 열어놨다가 그 위에 올려두고 문을 닫은 사실이 갑작스럽게 떠올랐다.
이걸 찾으려고 사방팔방 물어보고 다니고 민폐 끼친 게 민망했다. 하지만 민망함도 잠시 돌아온 에어팟에 기분이 날아갈 것 같았다. 다시 기분 좋게 잠이 들기 위해 눈을 감았다.
잠깐 잠이 든 사이 굉장히 행복하면서도 슬픈 꿈을 꾸었다. 지금까지 잃어버렸던 모든 것들이 첫 번째 옷장 서랍 속 들어있는 꿈. 잃어버린 물건들, 기억들, 사람들 전부 첫 번째 서랍 속에 있었다.
언젠가 또 무언가를 잃어버리게 될지도 모르겠다. 그때도 이번처럼 첫 번째 서랍을 열면 해결되었으면 좋겠다. 무언가를 잃어버리고 되찾는 일은 굉장히 힘이 든다. 그렇지만 시도할 가치가 있다.
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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