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술 - 김혼비, 술 좋아하세요?

 얼마 전 '퇴근 후 비밀독서모임'이라는 홍대, 합정, 망원지역의 직장인이 모인 독서 모임에 가입했다. 그 첫날 최근에 읽은 책을 들고 모여주세요. 라는 모임장의 요청에 나는 이북을 달랑 들고 갔다. 모임장은 김혼비작가의 우아하고 호쾌한 여자 축구라는 에세이를 들고 왔다. 잠깐 살펴봤는데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이었다. 글의 주제부터 눈길을 확 사로잡았다. 

 

 작가의 필명은 김혼비. 무조건 이건 닉혼비에서 따온 필명이다라는 생각에 호감이 확 갔다. 모임장은 유명한 작가고 재미있다고 했다. 그리고 아무튼, 술인가..? 그것도 재밌다던데.. 라고 말끝을 흐렸다. 

 

 집에 가는길에 리디셀렉트에 들어가서 김혼비를 검색해봤다. 아쉽게도 축구에세이는 나오지 않았지만 아무튼, 술은 있었다. 그래서 스토너의 다음 책으로 아무튼 술을 골랐다. 제목만 봐도 완전 술을 애찬할 것 같은 이야기였는데 역시나였다.

 

 

 

 

 우선 유년시절부터 쌓여온 술에 대한 나의 반감, 그리고 술과 관련된 치명적인 병으로 돌아가신 양가 할아버님들의 유전적 체질 덕분에 나는 술을 싫어한다. 나는 술이 싫다. 술이 싫은 사람이 술을 애찬하는 에세이를 읽는 것은 웃긴 것 같지만 재미있게 읽었다. 

 

 책에서 작가는 술 덕분에 재미있는 이야기를 꽤나 많이 얻었다. 술에 대한 작가의 생각을 제외하면 너무 공감가고 가슴에 와닿는 이야기가 많다. 내가 아는 이야기들도 많이 나와서 그럴 것 같기도하다. 쏟아지는 말장난과 하나의 단어의 본래 뜻과는 다른 이면의 뜻을 찾아내는 작가의 능력은 탁월했다. 종종 너무 가볍게도 느껴졌지만 그도 그대로 재미있게 읽혔다. 

 

 오바이트를 포스트모더니즘에 비유하는 이야기는 정말 기가 찼지만 맞는 말이었다. 걸으면서 팩소주를 마신 에피소드도 재미있었다. 한번 쯤 해보고 싶기까지 하다. 작가가 혼술하는 이야기에서는 내가 몰랐던 성차별 장면을 알 수 있게 되었다. 혼술 하는 여자. 우리나라는 아직도 성평등에 있어서는 갈길이 멀었구나 싶었다. 

 

 에세이는 술에 대한 다양하고 재미있는 에피소드들이 담겨있다. 전부 실제 경험이라니 얼마나 술을 마신 것일지 상상도 되지 않는다. 

 

 마지막 장 술로만 열리는 말들에서는 취기에서 나오는 진솔함에 대해 이야기 한다. '평소라면 잘 하지 못했을 말을 술술 하는 순간'을 작가는 좋아하는 것 같다. 나는 물론 싫어한다. 술을 먹지 않고 하지 못할 말이라면 안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고 있고, 나는 술을 먹든 안먹든 상관없이 할말은 하는 성격이기 때문에 더더욱 공감하지 못했던 부분이기도 하다. 앞으로도 이 생각에 변함은 없을 것이다.

 

 책을 읽으면서 술에 대한 견해의 차이를 꽤 많이 느낄 수 있었다. 에세이는 뭔가 공감하는 맛에 보는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전혀 다른 세계의 이야기를 접해서 그런가 재미있었다. 나도 술에 대한 에피소드를 한번 쭉 풀어보고 싶단 생각이 들었다.

 

 잘 쓴 글에는 두 가지 부류가 있다. 하나는 너무 잘써서 내가 쓴 글이 비루해 보여 쓰려는 의지를 꺾는 글, 또 하나는 너무 잘써서 나도 막 쓰고 싶어지는 글, 김혼비 작가는 후자의 글을 쓰는 사람 같다. 책은 172쪽으로 금방 읽힌다. 일상어로 속도감 있게 읽을 수 있었다. 축구에세이는 실물 책으로 사서 봐야겠다. 

 

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