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 - 올리버 색스, 따뜻한 임상사례집

판단이란 것은 직관적이고 개인적인 동시에 종합적이고 구체적인 것이다.

 

 

 오늘 리뷰할 책은 유명한 초현실주의 작가의 그림을 떠오르게 하는 표지를 가진 예쁜 책이다. 이 책에는 예쁜 표지만큼이나 따듯하고 예쁜 이야기가 가득 담겨있다.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는 신경에 문제가 생긴 환자들의 24가지 임상사례를 상실, 과잉, 이행, 단순함의 세계라는 4개의 파트로 나누어 소개한다. 출간은 1985년.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쓰였다.  

 



 작가는 올리버 색스. 처음 책을 마주한 건 군에서 였는데 22세쯤? 인상적인 제목이었으나, 표지의 그림(아이가 낙서해놓은 듯한)이 내키지 않아 보진 않았다. 13년이 지나고 책은 예쁜 표지를 얻게 되었으나, 나는 실물을 소유하지 못하고 리디셀렉트를 통해 전자책으로 마주하게 되었다.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와 <침대에서 떨어진 남자>, <대통령의 연설>, <매들린의 손>, <환각>, <쌍둥이 형제>가 특히 재미있었다. 첫 번째 사례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가 책의 제목이 되었다. 음악가인 P선생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된다. 


 표제작인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는 인지능력에 이상이 생긴 P선생의 이야기다. 그는 무언가를 보고 세부적으로 묘사를 할 수 있지만 전체가 무엇인지 결론 내리지 못한다. 

 

"길이가 15센티미터 정도군요. 붉은 것이 복잡하게 얽혀 있고, 초록색으로 된 기다란 것이 붙어 있네요"
 
나는 맞장구를 치며 말했다. "맞아요. 그게 뭐 같나요?"

"뭐라고 콕 꼬집어 말하기가 쉽지 않네요" 그는 당혹한 표정을 지었다. "플라토닉 다면체 같은 그런 단순한 대칭성은 없네요. 하지만 나름의 고차원적인 대칭성은 있을지 모르겠군요... 혹시 꽃일지도 모르겠네요."

"꽃 일지도 모르겠다고요?"

 

 그는 꽃의 향기를 맡기 전까지 꽃이라고 판단하지 못한다. 그의 증상은 물체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것 외에도 사람도 판단하지 못한다 그래서 아내를 모자로 착각하기도 한다. 

 

그녀는 "어머나, 의사 선생님, 그림 볼 줄 모르시네요! 선생님은 '예술적인 발전'을 보지 못하시나요? 처음에는 사실주의였다가 나중에는 거기서 벗어나 추상주의적인 비구상 그림으로 발전했잖아요." 하고 말했다. 

그의 그림은 분명 사실주의에서 비구상으로, 다시 추상으로 바뀌어갔지만, 발전한 것은 화가 자신이 아니라 그의 병세였다. 

 

 P선생의 이야기처럼 책에는 무언가 기능을 상실했거나 과잉된 사람들의 이야기가 생생하게 쓰여있다. 언어능력을 상실한 사람들은 언어보다 얼굴 표정이나 몸짓으로 타인과 소통했다. 

 

 언어상실증 환자들은 언어를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진실인가 아닌가를 이해하는 힘을 지니고 있다. 언어는 상실했지만 감수성이 특히 뛰어난 그들은 찡그린 얼굴, 꾸민 표정, 지나친 몸짓, 특히 부자연스러운 말투와 박자를 보고 그 말이 거짓이라는 걸 알아차린다. 따라서 언어 상실증 환자들은 언어에 속지 않으며 현란하고 괴상한(그들의 눈에는 그렇게 비친다) 말장난과 거짓, 불성실을 간파하고 반응을 보인다.  

그래서 대통령의 연설을 들으면서 폭소를 터뜨렸던 것이다.  

 

 손이 있다고 느끼는 고유 감각을 잃어버린 여자는 다른 능력을 활용하여 생활하고, 시야의 절반을 잃어버린 사람은 자신 앞에 놓인 것을 확인하기 위해 계속 오른쪽으로 돌아야 했다. 이런 이상한 상황들 속에서 인간 본연의 모습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었다. 환자들에 대한 측은지심이나 병에 대한 호기심보다 무엇이 인간을 만드는지 진지하게 생각해 볼 수 있던 좋은 책이다. 


 읽고 나서 느낀 바가 크다. 뭔가 잃었거나 추가로 얻었거나 단순화돼버린 사람들이 지금 멀쩡한 현대인들의 단면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요즘은 상황이 사람들에게 필요 이상의 상실과 과잉 그리고 이행과 단순화를 강요당한다. 책에 나온 환자들의 사례를 통해 스스로는 어떻게 살고 있는지 되돌아볼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되었다. 


  올리버 색스의 글은 어떤 환자들의 사례를 적어 놓은 것이 아닌 독특한 능력을 가진 히어로들을 소개하는 단편 소설집 같았다. 어떤 역경 속에서도 문제를 해결하고, 수용하며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과 그 모습을 따듯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그의 마음을 책에서 느낄 수 있었다. 

 


 제법 책이 두꺼워서 꺼려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 같은데 일단 표지가 예쁘니까 사두고 시간 날 때마다 한편한편 읽어보자. 작가 올리버 색스는 얼마 전 세상을 떠났다. 자서전도 출간되었다고 하니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를 재미있게 읽었던 사람이라면 한번 찾아봐도 좋을 것 같다.

 

 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