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디 말이라는 무기력하다. 말은 욕망의 예리한 문법 앞에서 혼란스러워지고, 꿈에 그리던 육체라는 불규칙동사변화표를 대하면 어찌할 바를 모른다. 날것 그대로를 앞에 두면 세상 어떤 말도 소용없다.
본질에 대하여. 제목만 봤을땐 철학이 가득담긴 심각한 에세이를 떠올렸다. 사전정보 없이 제목만 보고 덜컥 책을 집어들었고, 그대로 읽기 시작했다. 임경선작가의 <태도에 관하여>와 비슷한 장르의 글이 아닐까 생각했는데 여러가지로 충격을 받게 되었다. 장르는 소설이다. 에세이도, 철학 교양서도 아닌 소설. 연애소설이다. 본질에 대하여의 첫 페이지,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한다.
'아르튀르 드레퓌스는 풍만한 가슴을 좋아했다.'
그리고 이어지는 가슴에 대한 애찬. 처음엔 이 작가가 미쳤다. 라고 생각했다. 본질은 풍만한 가슴에 있는건가?? 하지만 알고보니 교양 서적이 아닌 소설의 도입부였고, 소설로써 이런 시작은 꽤나 신선하게 다가왔다.
작가는 그레구아르 들라쿠르. 카피라이터 출신 작가다. 다양한 문학상을 수상했고, 나오는 책들이 세계적으로 번역되어지고 있다. 저서로는 <행복만을 보았다>, <시작하는 연인들을 투케로 간다>, <개인주의 가족>, <내 욕망의 리스트> 등이 있다.
#본질에 대하여 줄거리
아르튀르 드레퓌스는 자동차정비공이다. 프랑스 작은 마을 정비소에서 일하고 있다. 그는 어린 여동생의 죽음, 아버지의 가출, 상실을 이겨내지 못한 어머니의 무관심이라는 비극적인 가정사속에서 커왔다. 비극적인 환경에서 컷지만 나름 조용하고 평화로운 삶을 살아가고 있다. 무료한 일상이 반복되던 어느날, 그의 작은 집에 스칼렛 요한슨이 찾아온다. 그가 완벽하다고 생각한 몸매와 얼굴의 이상형이 눈앞에 나타난 것. 아르튀르는 어색한 영어 발음으로, 미드에서 보았던 남자 주인공처럼 그녀에게 말한다. 'Come in'.
그녀는 조심스럽게 들어와서 아르튀르와 이야기를 나눈다. 아르튀르는 자신에게 찾아온 꿈같은 상황에 황홀해 한다. 스칼렛 요한슨의 환심을 사기 위해 자신이 알고 있는 멋진 시구들을 떠올리지만 목을 넘기지 못하고 사라진다. 그렇게 설레고 어색한 상황속에 두 사람의 묘한 동거가 시작된다.
혹시라도 그녀는 예스라고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는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 늘 그렇듯 두려움이 이겼기 때문이다.
두 인물의 일주일간의 만남을 통해 사랑과, 존재, 본질에 대한 질문을 대놓고 던진다. 불우한 가정환경, 가족의 상실과, 자아의 결핍, 관계, 사랑과 같은 주제를 일주일이라는 짧은기간 동안 멋진 남녀를 통해 밀도있게 풀어낸다. 사연있는 매력적인 캐릭터를 활용해서 전개와 몰입도가 대단하다. 연애소설이 가진 장점을 극한으로 끌어냈다.
중간중간 작가의 통찰력이 보이는 문장이 좋았다. 상실과 결핍을 겪는 두 사람의 만남으로 시작되는 이야기는 우리가 왜 누군가를 만나서 함께 살아야하는지 그리고 진짜 중요한게 무엇인지를 고민할 수 있게 도와준다. 충격적인 반전이 들어있다. 머리가 띵해질 정도로 충격적이었는데 그런 반전의 장치 때문에 본질에 대해 더 깊게 고민해 볼 수 있었다.
본질, 존재, 상실, 결핍,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다 해서 읽기 어렵게 느껴질지도 모르겠지만 주제들을 연인관계를 통해 풀어나가기 때문에 쉽고 재미있게 읽힌다. 본질은 생각보다 쉽게 접근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재밌게 읽었지만 주변에 추천하긴 조금 애매한 듯 하다.
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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