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무얼 하며 살았는가. 데미안은 자신을 스스로 돌아보게 하는 소설이다. 지금까지 세 번 정도 읽었던 것 같은데 읽을 때마다 어려워 혀를 내두른 기억만 있다.
새는 알을 깨고 나오려 힘겹게 싸운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려고 하는 자는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새는 신에게로 날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아낙수나문아브라삭스다.
다시 읽어보니 주인공 싱클레어는 지독한 중 2병이었다. 현대의 청소년들이 질풍노도의 시기를 겪을 때 너무 일반에서 엇나갈 수 있는 장치들이 많이 있다. 하지만 헤세 시절. 중2가 엇나갈 수 있는 장치란 고작 라틴어 학교에서 종교를 의심하기, 철학적으로 자아를 고민하기, 여성을 흠모하기 따위가 있다. 얼마나 건전하고 올바른 성장 과정인가. 만약 현대의 청소년들도 당시처럼 저런? 엇나감을 거쳤으면 성인이 되어 발생하는 다양한 문제들에서 벗어날 수 있었을 것이다. (?)
굳이 해석을 하면서 그럴듯한 리뷰를 하기에는 내 지적능력이 소설을 따라가지 못한다. 다만 나의 세계가 붕괴된 그 시점에 대해 떠올려 보게 되었다. (세계의 붕괴는 데미안에 등장하는 꽤나 중요한 요소이다. 성장과정에서 틀을 깨고 세상으로 나아가 자신을 확립하는 그런 시점을 표현한다.)
22세까지 언제나 평화로운 세계 안쪽에 살았다. 되는대로 살았고, 원초적이고 행복한 것들만 누리기 위해 움직였다. 그래서 나에게 적대감을 드러내는 것도 없었으며 세계는 내가 무슨 짓을 해도 나에게 밝은 것만 보여주었다. 나는 이때에도 책을 꽤 읽었지만 대부분 영양가 없는 소설이 대부분을 차지했다. 싱클레어가 겪은 유년기의 고뇌도 아직 겪지 않은 순수한 상태였다.
22세. 군에 들어가게 된다. 지금까지 평화만 있던 내 세계는 군에서 와장창 무너져 내렸다. '그냥' 나를 싫어하는 사람이 생겼고 그 사람들과 살아야 했다. 나도 그냥 미워하는 사람들이 생겼다. 와중에 이런저런 고뇌를 시작했고 그런 고민은 왜 살아야 하는가로 이어졌다. 싱클레어가 했던 고민을 나는 22살에서야 본격적으로 시작했던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나에겐 세계의 통합에 휩쓸려 무너지지 않도록 도와준 많은 '데미안'들이 있었다.
힘겹게 여럿의 '데미안' 들의 도움으로 나는 무사히 전역했고 그때부터 인생에 큰 변화들을 경험하게 된다. 절반의 세계가 아닌 하나의 세계로 세상을 바라보게 되었다. 그곳에는 절대적인 것은 없었다. 충실하게 살 수 있게 되었다. 잘 도와준 이제는 없거나 아직도 곁에 있는 많은 데미안들에게 감사를.
내 생각엔 이 책 때문에 많은 문학도를 잃게 되는 것 같다. 데미안은 청소년 권장도서 리스트에 올라가있다. 권장도서 리스트 순서상 ㄷ 라인에 있는 '데미안'은 가장 한눈에 들어오기도 하고 뭔가 제목도 세글자에 쉬울거 같고 이름이 친근하기 까지하다. 그렇게 데미안을 접하게 되면 싱클레어의 유년기를 설명하는 1장에서 다들 독서라는 좋은 취미생활을 포기하고 책을 영원히 덮었을 것이다. 솔직히 말해서 데미안은 청소년이 읽기에 어렵다. 그의 도덕적 고뇌와 세계의 구분에 공감하기보다 즐겨하는 게임의 전략 고민이 더 즐거울 나이이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나는 독서의 재미를 느끼기 전에 데미안을 언급하는 것을 반대한다.
싱클레어, 아직 어린아이군요! 싱클레어의 운명은 싱클레어를 사랑해요. 싱클레어가 충실하기만 한다면, 그 운명은 언젠가는 꿈꾸는 대로 완전히 싱클레어의 것이 될거에요.
'데미안'이라는 마성의 세글자는 친근하고, 쉬워보인다. 헤세의 자전적 이야기와 철학적 고뇌가 가득 들어있는 좋은 책인건 분명하다. 만약 스스로를 되돌아볼 계기가 필요하다거나 다 늙어서 중2병을 앓고 있다고 생각된다면 읽어보길 추천한다. 하지만 고전소설 읽어보고 싶은데 추천해주시술에는 추천하고 싶지않다. 차라리 헤세의 싯타르타나 쿠눌프가 더 쉽고 재미있게 읽힌다.
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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