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고.싶.다.
떠나고싶다. 코로나로 너무 지겹고, 사람들은 화나있고, 짜증나 있다. 와중에 날씨가 맑으니, 더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다. 이런 아찔한 기분을 조금 달래보고자, 여행책 하나를 들었다. 영국여행을 다룬 성질 고약하고 글 잘쓰기로 유명한 작가 빌 브라이슨의 <발칙한 영국산책>이 그 책이다.
영국은 여러모로 흥미로운 나라다. 나는 영국을 좋아한다. 영국 축구리그는 세계 최고의 수준을 자랑한다. 역사도 유구하여 신화와 모험이 가득하다. 역사적 사실과는 별개로 영국인들은 예의와 매너를 굉장히 중시한다. 작가들도 멋지다. 셰익스피어, 조지오웰, 제인오스틴, 코난도일, 찰스 디킨즈 등 대문호들이 즐비하다. 억양이 멋있다. 와 같은 이유로 영국을 좋아한다.
작가 빌 브라이슨은 나보다 훨씬 영국이 마음에 들었던 것 같다. (영국인과 결혼해서 영국에 취업할 정도로.) 미국 태생인 그는 영국에서 가정을 꾸리고 20년간 영국에서 거주했다. 책은 1995년에 출간 되었다. 빌 브라이슨이 51년생이니까. 50대에 출간된 여행기이다.
20년간 영국생활을 마치고 미국으로 돌아가기로 한 빌 브라이슨은 떠나기전 영국을 돌아보기로 결심한다. 그가 처음 영국에 방문했던 것 처럼 프랑스에서 도버해협을 건너 런던을 시작으로 글래스고 까지 영국을 종횡무진하면서 겪은 일화가 이 책에 재미있게 쓰여 있다.
나에게 있어서 모래는 주차장과 바닷물 사이에 있는 비우호적인 장애물에 지나지 않는다. 얼굴로 날아들고 샌드위치에 스며드는데다 열쇠나 동전 같이 중요한 물건을 꿀꺽 삼켜 버리기도 한다. 날씨가 더울 때는 발바닥을 데는 바람에 '으악!' 소리를 지르게 만든다. 몸에 물이 적셔 있기라도 하면 문신처럼 달라붙어서 소방수의 물세례를 맞아도 좀처럼 떨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참으로 신기하게도 비치타월 위에 올라서거나 차에 타거나 방금 청소한 카펫 위를 걸어갈 때면 스르르 잘도 떨어진다. 모래와 조우한 지 며칠이 지난 후에도 신발을 벗을 때마다 신기하게 줄어들지 않는 모래를 한 줌씩 쏟아내게 될 것이고 양말을 벗을 때마다 상당한 양의 모래를 주변에 흩뿌리게 될 것이다. 그 어떤 점염병보다 더 오랫동안 우리 주변에 머무는 게 바로 모래다.
이야기는 빌 브라이슨이 도시를 여행하면서 자신이 경험했던 것을, 그리고 마주하는 도시와 자연에 대한 묘사, 뜬금없이 연상되는 무언가, 아니면 영국에 대한 비판(1/3은 비판이었던거 같기도..)이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책을 읽으면서 가장 좋았던 점은 빌 브라이슨의 넘치는 여유와 유쾌함, 영국에 대한 비꼬기가 아니라 바로 번역이었다.
"새로 온 친구로구먼, 그렇지?"
"네, 그렇습니다."
"거기 졸리 있나?"
나는 어리둥절해 하며 눈을 껌뻑거렸다. 영어로 말하고 있는 게 분명했지만 참 요상한 대화란 생각이 들었다.
"그게 졸리다기보다는 조용합니다."
'졸리를 졸리다로' 번역한 내용은 번역전 원문이 궁금해질 정도로 잘 번역했다고 느꼈다. 북부 스코틀랜드 사투리를 표현한 부분도 정말 기가 막혔다. 충청도 사투리 쥬.를 붙어서 느낌을 잘 표현했다. 초월번역 이란게 이런거 아닐까..?
책을 읽는 내내 좋은 번역이 중요한 이유, 빌 브라이슨의 놀라운 통찰력, 그리고 내가 알지 못했던 영국의 생생함을 느낄 수 있어서 좋았다. 빌 브라이슨이 영국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느껴졌다.
빌 브라이슨의 ㅇㅇ산책 시리즈는 더이상 하루키 소설을 읽지 않는 이유와 마찬가지로 읽지 않을것 같다. 누군가 추천하면 '재밌어' 라고 말해줄 수 있겠지만 먼저 나서서 '읽어봐' 라고 하기엔 애매하다. 유럽산책은 제발 무조건 읽어보길 권한다. 여행에세이중에 가장 재미있다.
너무 재밌었지만 나름의 한계를 느꼈던 독서였다. 다음엔 뭘 읽어볼까!
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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