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독서량이 줄어 반성하는 시간을 가졌다. 작년 김모작가의 윤리문제와 출판사들의 안일한 대처 때문에 한국문학을 멀리하기 시작했는데, 사실 한국문학을 즐겨읽는 편이 아니라 독서량 감소의 이유로 그 핑계를 대기엔 조금 치사한거 같다. 그냥 읽기 자체에 조금 지쳤을까. 요즘은 사회적인 무거운 이슈들을 자주 경험하게 된다. 그래서 조금 가벼운 것들을 찾는 경향이 있다. 영화도, 드라마도 편하게 볼 수 있는 무겁지 않은 주제들로 고르려고 한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책이 멀어진 것 같다. 책은 나에게 꽤 무겁다.
지난해 비교 결과 약 4배정도(?) 수준으로 책을 읽지 않고 있었다. 뭐라도 읽기 위해 지인들에게 책 추천을 받았다. 나는 추천받으면 읽을 수 밖에 없다. 추천자에 대한 예의랄까. 추천 받았으면 후기를 들려줘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서 꼭 읽으려고 노력한다. 다양한 책들을 추천받았다. <달콤한 나의도시>, <고래>, <표백>, <저물녘 맹수들의 싸움>, <어린이라는 세계>, <쇼코의 미소> 등.
그중에서도 나는 <어린이라는 세계>에 끌렸다. 저중에서 가벼운 내용일것 같아서 일까. 읽는 내내 미소 짓고 눈물 흘렸다. <어린이라는 세계>는 결코 가볍지 않았다. 되려 추천작들 중에 가장 무거웠을지도 모르겠다. 어린이에 대한 생각이 바뀌게 되었다.
작가는 김소영 선생님. 어린이 독서교실을 운영하는 분이다. 독서를 업으로 삼는 분이라 그런가 글에 독자를 배려하는 무언가가 느껴졌다. 어린이와 독서교실에서 있었던 일들을 재밌고 따듯하게 풀어낸다. 에세이 구성에도 놀랐다. 처음에는 그냥 어린이가 가진 귀엽고 사랑스러움에 대한 이야기를 줄창 풀어나갈 줄 알았는데(이랬어도 좋았을 것 같긴 하지만), 실제로는 좀 더 나아가 어린이라는 세계가 있다는 안내, 그리고 그 세계에 사는 어린이를 대하는 스스로의 태도를 되돌아 볼 수 있게 구성되어 있었다.
점진적으로 어린이에 대한 중요한 이슈들을 풀어나가는 것을 보고 책을 쓰는데 대단한 노력이 들어갔을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이 책을 쓴 작가도, 편집자도, 추천해준 사람도 너무나 고맙게 느껴졌다.
<어린이라는 세계>는 작가가 독서교실에서 만난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놓은 에세이다. 등장하는 어린이들은 한글을 땐 10세 전후의 아이들이다. 얼마나 귀엽고 사랑스러운 이야기들이 있는지 모른다. 거의 매 에피소드 마다 연신 셔터를 눌렀다. (나는 재밌는 부분이 있으면 사진으로 기록해 두는 편이다.)
"그렇게 농사를 짓다 보니까, 드디어! 필요한 것보다 많이 생산하게 된 거야. 우리 마을에서 다 먹고도 남을 만큼 많이! 자, 그러면 어떻게 하면 좋을까?"
하윤이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대답했다.
"나눠줘요!"
그밖에 답이 있을 리 없다고 확신하는 얼굴이었다. 이런 하윤이에게 경제논리를 설명하려니 나는 갑자기 속이 시커먼 어른이 된 것 같았다.
경제 개념을 설명하던 에피소드다. 제일 좋아하는 부분이다. 최근에 돈을 벌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어서 그런걸지도 모르겠지만 나눠준다니. 다 먹고도 남을 만큼 남으면 나눠주는게 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기자기하고 귀엽고, 순수하고 사랑스러운 에피소드들이 가득하다.
읽으며 많은 생각이 들었다. 교육학을 전공한 나는 영유아 발달에 대한 지식과 나름의 철학은 있었는데 '어린이'에 대한 생각은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그저 귀엽고 순수하다고만 생각했던 어린이들에게 어른과 똑같은 하나의 세계가 있단 사실이 머리속을 후려쳤다. 어린이라는 세계는 어른의 세계보다 조금은 느리지만 맑고 바르다.
주변에 어린이들이 가진 순수한 선의가 어른이 되어서까지도 유지되도록 돕는 어른이 되어야겠다. 그래야 어른의 세계도 조금은 맑아지지 않을까? 하윤이의 "나눠줘요!" 가 머릿속에 맴돈다. 어린이라는 세계를 지켜주기 위해 얼마 전 세이브더칠드런에 소소하게 기부를 시작했다. 작은 돈이지만 그 세계의 순수가 지속되는데 쓰이길 바란다.
e북으로 보려고 했는데 그냥 한권 사서 소중한 사람에게 선물했다. 누가 읽어도 재밌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좋은 책에 대한 고민이 있었는데 정답같은 책을 읽을 수 있어서 좋았다.
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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