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소설 - 재밌다고들 하지만 나는 두 번 다시 하지 않을 일,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

처음만나는 글빨 좋은 에세이

 

<제목이 너무 길기 때문에 굳이 리뷰의 제목을 달지 않았다>

 

 

 아아. 뭐라고 시작해야할까. 이 책은 엄청나게 재미있다. 나는 좋은 책을 읽게 되면 책의 영향을 받아 현실에 뭔가를 반영하는데(하루키의 소설을 읽고 재즈를 들어본다던가, 헤밍웨이의 소설을 읽고 문체가 변한다던가 하는 식) 이 책을 읽고 반영된 것은 세 가지다. 긴 문장의 글을 쓰는 것이 무조건 나쁜건 아니다 라는 사실을 알게 된 것. 도스토옙스키의 소설을 제대로 읽어봐야겠다고 결심한 것. 그리고 로저 페더러의 경기를 찾아본 것이다.  

 


 

 우리에겐 생소한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는 46세에 스스로 생을 마감한 미국 작가다. 철학과 영문학을 전공했으며 <무한한 재미>라는 1천페이지가 넘는 소설 거기에 붙는 300개의 각주로 명성과 악명을 동시에 얻었다. 이 책은 타임지가 선정한 20세기 미국 100대 걸작소설에 들었다. 국내에는 18년도 <재밌다고들 하지만 나는 두 번 다시 하지 않을 일>을 통해 소개 되었다. 작가는 십대 때부터 불안장애와 우울증을 앓아왔다. 그 때문에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고 한다. 처방약 나르딜의 부작용 때문에 잠시 약 복용을 중단 했을 무렵 자살로 생을 마감하고 만다. 3편의 소설과 3편의 산문집을 남겼다. 이렇게 재미있는 글을 쓰는 작가가 일찍이 생을 마감한건 참 안타깝다.

 

 오늘 소개할 책 <재밌다...않을 일>은 어딘가에 기고한 글과 에세이를 묶어 놓은 산문집이다. 크루즈 여행선의 의뢰를 받아 홍보용 기고문을 쓰기 위한 표제작 <재밌다..않을 일>부터 젊은 작가들을 비판하고 문학계의 미래를 걱정하는 <픽션의 미래와 현격한 젊은 작가들> 까지 그의 해학이 담긴 에세이는 독자로 하여금 새로운 시야를 갖게 한다.

 

 나는 지금 서른 세살이다. 세월이 벌써 한참 흘렀고, 매일 점점 더 빨리 흐르는 것처럼 느껴진다. 나는 매일매일 무엇이 좋고 중요하고 재미있는가에 대해서 여러 선택을 내려야 하고, 그 선택으로 말미암아 가느엉이 차단된 다른 선택들의 박탈을 감수해야 한다. 나는 차츰 깨닫고 있다. 세월이 점점 빠르게 흐를수록 선택의 폭은 점점 더 좁아지고 발탁된 선택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서 결국 내 인생은 평생 풍성하고 복잡하게 가지 쳐온 나무가지의 한 지점에 다다를텐데, 그 지점에서 내 삶은 그 하나의 경로로 제한될테고 이후에는 세월이 나를 정체와 위축과 부패의 단계로 몰아넣을 것이며 그러다 결국 나는 최후의 구조의 기회마저 놓치고 그동안의 모든 싸움이 허무로 돌아가는 것을 보면서 시간에 익사할 것이다. 무서운 일이다. 하지만 나를 그렇게 가두는 것은 다름아닌 내 선택들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일로 보인다. 조금이라도 어른답게 살고 싶다면, 나는 어떻게든 선택을 해야 하고 그로 인한 박탈을 애석해하면서도 그것을 감수하고 살아가야만 한다. 

 

 


 

 

 표제작 <재밌다.. 않을 일>에서는 선실 청소 서비스에 대한 의문을 품고 그것을 관찰한다. 페트라라고 하는 담당 서비스 직원은 하루에 한 번 월리스가 선실을 30분 이상 비울때만 귀신같이 나타나 완벽하게 청소를 해놓는다. 한 번도 페트라가 자신의 선실을 청소하는 모습을 목격한적 없는 월리스는 자신이 외출한 사실을 페트라가 어떻게 아는지 확인하기 위해 느닷없이 뛰어나간다던가, 나가서 몰래 방문을 지켜본다던가, 카메라가 설치되어 있지 않은지, 자신의 행보를 미행당하지 않는지 확인하는 것.. 등 다양한 방식으로 테스트 해본다.(결국 알아내지 못한다.) 위 예시처럼 누구는 크게 신경쓰지 않을 일들을 심도있게 고민한다던가 하는데 어찌보면 병적 집착이라고 느껴질만큼 집요하다. 그의 글쓰기는 집요한 글쓰기이다. 

 


 

 

 의뢰를 받고 작성된 기고문들이 많은데 요청한 목적(이런이런 곳에 가서 여기에 맞는 좋은 홍보글을 써주세요)과는 맞지 않는 글이 대부분이다. <재밌다고들 하지만 나는 두 번 다시 하지 않을 일은> 크루즈 네이디어호의 체험후기를 요청 받아 작성되었는데 글은 너무 재미있었지만 굳이 선상 크루즈 여행을 하고 싶은 마음은 들지 않았다. <고메>라는 음식잡지의 요청으로 랍스터 축제에 대해 기고문을 쓴 <랍스터에 대해 생각해봐>는 랍스터의 역사로 시작하여 랍스터의 생물학적 구조와, 살아 있는 랍스터를 끓는 물에 넣는 것이 얼마나 잔인한 일인지에 대해 다양한 방식으로 설명한다. 랍스터축제의 홍보를 위해 기고문을 요청했을 텐데 이 글을 받았을 때 편집자가 느꼈을 감정이 얼마나 끔찍 했을지는 상상조차 하기 싫다. (글 자체는 너무 재미있다.) 

 

 물론 랍스터를 즉석에서 죽여서 최상의 신선함을 유지하는 방법에도 또 다른 방법들이 있다. 어떤 요리사들은 랍스터의 두 줄기 눈 정중앙 바로 위 쪽에 날카롭고 묵직한 칼 끝을 꽂아 넣는 방법을 쓴다. 이렇게하면 랍스터가 즉시 죽거나 감각이 마비된다고 한다. 최소한 랍스터를 끓는 물에 던져 넣은 뒤 부엌을 도망치는 것보다는 덜 비겁한 방법이라고 한다. 내가 머리에 칼 꽂기 방법을 지지하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눠보고 얻은 인상은, 사람들이 이 방법을 비록 좀더 폭력적이지만 궁극에는 좀더 자비로운 방법으로 여긴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또 랍스터의 머리에 손수 칼을 꽂음으로써 기꺼이 주체성을 발휘하고 책임을 인정하는 것이 말하자면 랍스터를 좀더 존중하는 행동이라고, 따라서 그에게는 랍스터를 먹을만한 자격이 부여되는 셈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논증에는 북아메리카 원주민들이 말하는 이른바 '사냥의 영성' 같은 분위기가 막연하게 감돈다)

 

 

 이런 식으로 돈을 받고 쓰는 글이지만 그 목적과 정 반대로 쓴 글 아니면 월리스가 좋아하는 것들에 대한 극한의 찬미 글이 들어있다. '카프카가 유머러스 하다'(?), '도스토옙스키의 위대함', '페더러의 아름다움'과 같은 글들인데 페더러의 테니스에 묘사한 글은 테니스의 ㅌ도 몰랐던 나 조차 페더러의 경기를 찾아보게 하고 존경하게 만들 만큼 멋진 글이다. (카프카가 유머러스하다는 주장에는 동의하기 쉽지 않다.)

 

 월리스의 문장은 꽤 길다. 하지만 버릴 내용이 전혀 없다. 꼭 필요한 이야기를 하는데 이렇게 긴 문장이 필요한 사람이라니. 엄청나게 매력적이다. 각주. 각주는 또 어떤지 하나의 각주가 책 한페이지를 넘어가는 경우도 종종 있다. 이게 무슨소린지 사실 말로는 감이 안오는데 아래 사진을 보면 알 수 있다. 

 

 

 이 책은 선물 받았는데, 내가 추측하기로 선물준이는 각주의 홍수인 <권위와 미국영어 어법>을 넘기지 못했을 것 같다. 미국 영어사전에 대한 이 기고문은 영어사전이란 것은 특정집단을 위해 쓰여지며 다양하고 복잡한 이유들 때문에 표준 영어 어법이란 것은 그들의 권위를 위해 활용된다고 이야기한다. 그런 특정 계층을 스누트라고 하며 비꼬는데 자신의 글을 읽게 될 스누트들을 때문인지 엄청난 예시와 영문법에 대한 각주가 쏟아진다. 나는 스누트가 아니기 때문에 대부분의 각주를 뛰어넘기고 겨우 겨우 읽었다.(솔직히 이 기고문은 순전히 번역자의 취향 때문에 넣은 것 같다.) 영문학을 전공한 사람이라면 재미있게 읽을지도 모르겠다. 

 


 

 책에 대한 설명은 이 정도면 충분할 것 같다. 이미 포스팅이 꽤 길어졌기 때문에 끝을 내야겠다. 보통의 두 배 정도 되는 분량인데 그만큼 이 책이 재미 있다는 뜻이다.

 

 본문만 읽는다면 굉장히 읽기 쉬운 책이라고 할 수 있지만, 각주까지 꼼꼼하게 파고든다면 그리 친절한 책은 아니다. 내가 생각하기에 월리스의 에세이는 내가 아는 어떤 교수의 강의를 듣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 교수는 A이야기를 하다 예시로 B이야기를 한다. 그러다 갑자기 B예시의 예시로 C이야기를 꺼낸 후 다시 B이야기로 돌아와 이야기를 마무리 짓는다. 

 

물론 월리스의 경우는 각주라는 좋은 도구를 이용하기 때문에 A이야기는 계속 된다.   A 사이사이에 B-C를 마구마구마구마구 집어넣는 것이라 A이야기를 안해버리는 그 교수와는 근본적으로 다르지만 읽은 순간 느껴지기엔 비슷했다. 각주를 꼼꼼하게 챙기다 보면 본래 줄거리를 찾아야 하는 과정을 겪어야 할지도 모른다. 각주의 각주가 존재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각주 자체가 워낙 길어서 하나의 이야기로 느껴질 정도이기 때문이다.

 

 이런 불 친절함에도 불구하고. (어쩌면 이 각주는 작가의 극단적인 과잉친절일지도 모르겠다.) 책이 가져야할 본연의 것에 충실하다. 읽는 즐거움이 있다. 작가의 통찰력이 문장에 잘 녹아 있으며, 본문만을 읽는다면 독서에도 크게 무리가 없다. 에세이들로 이루어져 있어 읽는 그대로 이해하면 되고, 표제작을 제외하면 꽤 짧은 길이라 편하게 읽을 수 있다. 

 

 재미있는 에세이를 찾는다면 <재밌다고들 하지만 나는 두 번 다시 하지 않을 일> 만한 책을 찾기 어려울 것이다. 에세이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꼭 한번 읽기에 도전해보시길 바란다.

 

 책을 선물해준 김 편집자님에게. 

띠지와 함께 책장에 고이 모셔두겠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