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성당 소박한 경이로움
대성당. 레이먼드 카버의 단편소설 중 한편의 이름이자, 이 소설집의 제목이기도 하다. 사실 대성당이라는 제목마 봤을 때는 엄청나게 지루한 한편의 장편소설 같은 느낌이었다.
서점에서도 책을 열어볼 생각조차 안했다. 왜냐면 대성당이니까. 그냥 성당도 아니고 '대'성당. 편협한 내 머리속에 성당은 지루함과 숭고함의 대명사로 자리잡고 있었다. 그렇다면 대성당은? 큰 지루함, 더 큰 숭고함의 공식이 자연스럽게 .. 소설을 읽으면서 지루하기도, 숭고해지기도 싫었던 나는 이 소설을 무시 했었다.
#레이먼드 카버
레이먼드 카버. 뭔가 멋진 이름이다. 그래서 나는 이 작가를 진즉 알고 있었다. 미국의 안톤 체호프. 그냥 체호프도 잘 모르는 나에게 미국의 안톤 체호프라는 별명이 이상하게 멋있게 느껴졌다. 읽을거리가 떨어져 서점을 서성이다. 문학동네에서 책 표지가 변경된 새로운 버전의 예쁜 양장본이 나왔길래 사버렸다.
작가 안톤 체호...아니. 레이먼드 카버는 미국의 작가다. 1938년 가난한 제재소 노동자의 아들로 태어나, 존 가드너를 만나 문학적 소양을 쌓게 된다. 알콜중독, 가정불화, 파산을 겪으며 불행한 삶을 살아간다. 그러다 1976년 첫 소설집 <제발 조용히 좀 해요>가 호평을 받으며 창작활동을 지속하게 한다. 이후 1983년 발표된 <대성당>이 전미 도서상과 퓰리처상 후보로 오르게 된다. 그러나 5년 뒤 암으로 사망한다. 1980년대 단편 소설 르네상스를 이끌었다고 평가된다.
그는 미국의 체호프라고 불리는 별명답게, 대단한 단편집을 써냈다. 나는 헤밍웨이를 자연스럽게 떠올렸다. 문체는 짧고 간결하며, 담담하다.
#일상언어로 성공한 소설_더티리얼리즘
대성당. 소설집 제목이 대성당이니까. 우선 대성당에 대한 이야기로 소설 리뷰를 시작해야겠다. 대성당은 어떤 미국 장교의 이야기다. 장교의 아내에게는 맹인 친구가 있는데 장교와는 일면식이 없다. 그의 부인은 맹인과 녹음 테이프를 주고 받으며 거의 모든것을 공유하는 사이였다. 어느날 맹인이 그의 집으로 하룻밤 묵기 위해 찾아오기로 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장교는 아내의 맹인친구가 탐탁치 않다. 자신보다 부인과 가깝다고 생각되는 맹인에게 질투하기도 한다. 그들의 기묘한 저녁시간은 계속되는데 술과 담배를 하며 이야기를 나눈다. 부인이 술에 취해 잠들고, 둘은 TV를 보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다.
마침 TV에는 중세에 대한 다큐멘터리가 나오고 있다. 다큐멘터리 화면을 장교는 맹인에게 열심히 설명한다. 화면이 바뀌고 대성당이 등장한다. 카메라는 파리의 대성당 이곳 저곳을 비춰주는데 문득 장교는 맹인이 대성당이 어떻게 생겼는지 알고 있을지 궁금해한다.
"대성당이 어떤 것인지에 대한 감이 있습니까? 그러니까 어떻게 생긴 건지 아시냐는 겁니다."
이 질문에 맹인은 솔직히 자신은 잘 모른다며, 대성당에 대한 감이 없다고 답한다. 갑자기 장교는 대성당에 대해 설명해야하는 막막함에 사로잡힌다. 그는 말로 대성당을 설명하기 시작하는데 크게 맹인에게 이해시키기엔 너무 막연한 건축물이다.
그때 맹인은 펜과 종이를 가지고와 대성당을 그려보라고 부탁한다. 그리고 장교의 손위에 자신의 손을 얹고는 장교가 그리는 대성당을 손과 종이위의 자국으로 이해하려고 한다. 한창 그리고 있을때 맹인은 눈을 감고 그려보라고 조언한다. 눈을 감고 정신없이 대성당을 그리는 장교는 새로운 세상을 마주하게 된다.
대성당은 상상을 통해 무언가 배우고 깨닫는 것을 이야기 한다. 대성당의 장교는 멀쩡하지만 관계에서 귀를 닫아버린, 들으려고 하지 않는 사람이다. 맹인은 듣는 사람이다. 보지 못한다. 하지만 말로, 듣는 것으로, 보는 것 만으로는 설명하지 못하는 어떤 것들이 있다.
소설속에서는 TV화면속에서 나오는 맹인은 감이 없는 대성당이다. 이것을 배우기 위해 맹인은 자신이 보는 법을 장교에게 알린다. 그리고 장교는 새로운 것을 보게 된다.
"어때, 보고있나?"
"이거 진짜 대단하군요"
대성당은 전혀 다른 두 인물이 자신의 언어로 설명할 수 없는 무언가를 전혀 새로운 방식으로 보는 것으로 끝이난다. 진짜 대단한 그 무엇이 무엇인지는 읽는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대성당 외에는 <열>, <굴레>,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이 좋았다. 당시 미국사회의 단편적인 모습들을 볼수있고, 말하기 불편한 이야기를 지나치게 사실적으로 표현한 것이 무척 재미있었다. 이런 그의 소설을 두고 '더티리얼리즘' 이라는 수식어를 붙이기도 한다.
소설은 대부분 독자에게 새로운 시각을 주려는 이야기가 많다고 느껴졌다.(새로운 시각을 어떤 방식을 어떻게 얻게 되는지는 독자의 몫이긴 하다..)
자신 세계에 갇힌 사람들이, 외부와의 소통을 통해 '뭔가'를 깨닫게 된다. 읽게 된다면 '이거 진짜 대단하군요'라고 느끼는 사람도 있을거 같고, '엥 이게 뭐야'라고 말할 사람들도 있을 거 같다. 대성당의 장교가 그랬듯 깨닫게 되는 건 읽는 사람들의 몫이 될 것 같다.
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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