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끄러웠다. 제목과 소설 제목이 이렇게 잘 맞는 경우도 드문데... 라는 생각이 들었다. 주인공 '한탸'의 빼곡한 독백이 글로 옮겨져 있다.
#보후밀 흐라발
작가는 체코의 거장 보후밀 흐라발 1914년생 작가. 2차세계대전을 경험했다. 철도원, 보험사 직원, 제철소의 잡역부 등 다양한 직업을 경험했다고 한다. 첫 소설집 <바닥의 작은진주>를 출간하며 작가로 데뷔했고, <엄중히 감시받는 열차>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체코정부의 검열과 감시로 많은 작품들이 출판을 금지당했다. 체코 소설의 슬픈왕 이라 불렸는데 많은 체코 작가들이 프랑스로 망명하여 프랑스어 소설을 쓴 반면 그는 체코에 남아 체코어로 끝까지 작품을 집필했다고 한다.
프란츠 카프카, 밀란 쿤데라에 이어 체코를 대표하는 작가중 한명으로 자신의 진짜 인생경험담을 이야기에 담고 있다. 이야기를 극적으로 과장하고, 변형하여 독특하고 개성있는 작품으로 만들어 냈다.
#너무 시끄러운 고독 줄거리
주인공 '한탸'는 지하에서 폐지를 압축하는 일을 한다. 35년째 그 일을 해온 한탸는 그일에 적합한 상태가 되어버렸다. 그는 쏟아지는 폐지들 속에서 옥석을 가려냈고, 지식을 습득했다. 그는 누구보다 많은 텍스트를 접했다. 35년간 쌓인 지식과 사상은 그를 반쯤 미치게 만든다.
너무 많은 텍스트가 쏟아지기 때문에 한탸는 항상 지하에서 맥주를 마시며 일한다. 왕조의 몰락과 전쟁으로 말도안되는 귀중한 도서들이 들어올 때도 있다. 귀중한 책들은 별도의 꾸러미로 만들어서 보관한다. 그의 집은 약 2톤가량의 책들이 쌓여있다. 잘못 건들면 무너질 것 같은 불안함에 한타는 한껏 웅크리고 자는데 그래서 그런가 그의 몸은 크게 작아졌다.
한탸는 헤겔과 니체, 노자와 예수의 텍스트를 녹색버튼을 눌러 압축한다. 네모 반듯한 폐지 덩어리를 만드는 것. 그리고 살려야 하는 책은 살려서 보관하는 것. 그것이 한탸의 사명이다. 한탸는 곧 은퇴할 자신과 기계를 위해 돈을 모은다. 은퇴와 동시에 폐지를 압축할 기계를 사려는 것이다.
시대가 지나고, 한탸가 조작하는 압축기의 수배의 성능을 발휘하는 기계가 들어왔다는 소식을 듣는다. 한탸는 소장과 함께 폐지압축 공장에 가본다. 컨테이너에서 일하는 젊은이들. 그들은 자신들이 무슨일을 하고 있는지 모른다. 웃으며 그저 기계로 종이를 밀어 넣을 뿐이다. 거대한 시대의 흐름에 한탸는 방황한다.
#시대의 속도와 늙는 것에 대해
나에게 이 책은 변화무쌍한 시대의 속도와 나이듦에 관한 이야기였다. 빠르게 변하는 세월을 쏟아지는 책들로 감내하고, 묵묵히 자신의 할일을 하다보니 설자리가 없어진 노인 한탸.
한탸는 시대의 피해자이다. 시대에 사랑을 빼앗기고 쏟아지는 사상과 철학에 원하던 원하지 않았던 그것을 받아드리며 세월을 보낸다.
새로운 기계에서 일하는 젊은 노동자들이 그리스로 여행을 간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한탸는 그들이 핼레네와 트로이에 대해, 그리고 빛나는 그리스의 철학에 대해 알지도 못하면서 여행을 가려고 한다는 사실에 화를 내지만 정작 자신이 여행을 가볼 생각을 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이후 자신이 일하던 지하실에 새로운 젊은 직원들이 와서 자신의 분신과 다름없던 압축기가 그들의 손에서 더욱 가열차게 작동하는 것을 보고 큰 상실을 느끼게 된다.
한탸가 여행을 가볼 생각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서 그가 잊고 있었던 시대의 흐름을 한번에 몰아서 맞게 된 것 같다. 머리 속에 모든 사상과 철학이 들어 있었음에도 그걸 사용하고 실제로 경험하려는 생각조차 하지 못한다면 그 사상과 철학이 다 무슨소용일까. 지행일치, 지행합일라는 말이 떠올랐다. 아는 것은 실천의 시작이고, 실천은 아는 것의 완성이다.
나는 한탸처럼 변화무쌍한 시대의 흐름을 온몸으로 느끼진 못했지만 소설 속 그의 과거와 현재를 보며 언젠가는 나도 그의 감정과 선택을 더 깊게 이해할 수 있는 날이 오지 않을까 생각한다.
끗-
* 선물해준 편집자 K씨에게 감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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