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문장의 힘은 대단하다. 왜 첫 문장이 중요한지는 책을 읽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수 있다. 좋은 책의 첫 문장은 언제나 회자된다. 첫 문장이 대단하다고 느껴진다면 그 이야기는 재미없을 수 없을 정도.
워낙 유명한 첫 문장들이 있다. 두 도시 이야기, 오만과 편견, 모비딕 부터 마션까지. 나는 폴 오스터의 첫 문장들도 좋아한다.
I'm pretty much fucked. That's my considered opinion. Fucked.
-마션의 영어버전 소설 첫 문장-
오늘 포스팅할 유디트 헤르만의 <여름별장, 그 후>도 멋진 첫 문장과 단락들이 넘치는 책이다. 유디트 헤르만, 독일의 작가 1970년 서베르릴렌에서 태어나 독문학, 철학, 연극, 음악을 공부했다. <여름 별장, 그 후>는 그녀의 첫번째 작품집이다. 휴고상과, 브레머 문학상, 클라이스트 상을 수상한다.
소설은 7개의 단편집이다. 기승전결이 뚜렷다하다면 뚜렷하고 약하다고 하면 약할 수 있을 것 같다. 이야기는 전반적으로 어두우면서도, 밝다. 참 색과 공간의 표현을 잘하는 작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읽는 내내 작품속에 들어있는 배경에 빨려들어가 그곳의 공기를 호흡하는 듯한 착각에 빠졌다.
짧은 글속에 함축되어 있는 이야기는 또 어떠한가. 이야기에는 어딘가 결핍 되어있고 상실을 느끼는, 아니면 어딘가로 부터 달아나려고 하는 인물들을 등장시킨다. 젊은 등장인물들은 관계속에서 미묘하게 어긋나기도 하고, 서로에게 의지하기도 하는데 나는 읽으며 그저 먹먹함만을 느낄 수 있었다.
이야기가 교훈적이거나, 감동을 주진 않는다. 다만 일상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들을 차분하게(어쩌면 그 차분함이 지나치게 아름다워 보이기도 했다.) 인간 감정 근원의 어딘가를 보여주려고 애쓰는듯 느껴졌다.
나는 단편들 중 <붉은 산호초>, <허리케인>, <소냐>, <여름 별장, 그 후>가 특히나 좋았다. 9편 중 4편이 특히나 좋다고 말하기 머쓱하지만 그렇다.
"나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심리 치료 상담을 받았고, 그 때문에 붉은 산호 팔찌와 내 애인을 잃었다."
<붉은 산호초>는 산호 팔찌에서 부터 이야기를 전개하는 과정이 너무나 세련되게 느껴졌다. 위의 문장이 붉은산호초의 첫 문장인데 한번에 이야기에 빠져들게 만드는 마법같은 힘을 느낄 수 있었다.
<허리케인>은 현실을 도피하고 방문한 휴가지에서 허리케인이 올거라는걸 알면서도 떠나지 않고 허리케인에 의해 갇혀있길 바란다. 등장하는 인물간의 어긋나는 미묘한 감정 묘사가, 그리고 허리케인이 다가오고 있다는 상황이 멋진 이야기를 만들어 냈다.
<소냐>는 나긋나긋하다. 여자친구를 만나고 돌아오는 젊은화가는 예쁘지 않은 여성 소냐를 만나면서 그녀와 사랑에 빠지게 된다. 소설속에서는 사랑이라는 표현이 등장하진 않는다. 방금 포스팅에 '사랑에 빠지게 된다' 라고 써놨더니 내가 이 섬세한 이야기를 엄청나게 투박한 글이라고 모욕하고 있는거 같아 갑자기 기분이 나빠졌다.
마지막 표제작 <여름 별장, 그 후>는 택시 운전사 슈타인에 대한 이야기다. 주인공은 슈타인과 교제했다. 슈타인은 나의 친구들과도 교제한다. 그는 집이 없고 여기저기 떠돌아 다니면서 사는데 한동안 연락이 없던 슈타인은 어느날 딱 맞는 집을 찾았다며 그녀에게 연락해 온다.
앞서도 몇 번이나 언급했지만 장점이 너무 많은 소설집이다. 사실적이면서도 시적인 문체, 이야기속 배경을 경험하고 있는 듯한 묘사, 그리고 어딘가 우울하면서도 담담한 젊은이들이 등장하여 다채로운 이야기를 만든다. 내 표현력의 한계가 너무 안타까운데 올 여름이 가기 전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꼭 한번 읽었으면 하는 소설집이다.
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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