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28일, 조력자살 - 미야시타 요이치, 안락사 - 죽음에 대한 르포

 매체의 발달(?)로 내가 모르는 암 환자들의 상세한 이야기를 알 수 있게 되었다. TV속 다큐에서, 지인의 지인, 엄마친구의 친구에게 전해 듣던 제3자의 일을 일상에서 당사자에게 직접 이야기 들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얼마 전 지인과 암 보험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나는 가족력이 있는 것도 아니고, 젊은나이에 암 보험은 필요 없을 것 같다' 라는 이야길 한 적있다. 그 이야기 이후 한 블로그를 발견하게 되었는데, 업무 중에 눈물을 흘리면서 보게 된다.

 

 내장에 암이 생긴 20대 여성의 블로그였는데 단순한 복통에 진료 받으러 갔다가 암을 발견한다. 그녀는 말기 암. 정말 보는 내내 속상했다. 젊은 나이에도 암 보험은 필요없을 것 같다고 확언하면 안되겠다고 생각했다. '암' 얼마나 끔찍한가. 블로그에서는 이 약의 효과가 어쩌고, 항암치료가 어쩌고 하는 현실적인 이야기를 보는 사람 마음 아프게 밝게도 써놨다. 

 


 

 암에 대한 이런저런 글들을 읽고, 투병생활과 죽음에 대해 고민해보았다 나라면 과연 어떻게 할까. 치료에 들어가는 비용, 수발하는 부모님과 동생의 모습을 떠올리니 더 살아갈 수 있을까 하는 아찔한 기분에 빠졌다. 아마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을 생각해 볼 것 같다.

 

 조금 어두운 서두로 시작했다. 오늘 소개할 책은 <11월 28일, 조력자살>.

 

 

 조력자살 이라고 하면 좀 생경한데, 안락사라고 하면 조금은 익숙한 기분이다. 심각한 병을 겪고 있는 사람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과정에 대해 다루고 있다.

 

마지막으로 나는 "많이 힘드시겠지만 힘내세요" 라고 썼다. 어쩔 수 없이 '힘내세요'라는 말을 던지고 만다. 그것은 내가 지금 건강하고, 죽음을 의식하지 않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희망을 가질 수 없는 사람에게 그런 격려의 말이 때로는 역효과를 준다는 것도 알지만... 

 

 지난 주 광화문 교보문고 에세이 가판에 새롭게 책들이 세팅되고 있었다. 책 표지를 보자마자 얼마전 읽었던 암 환자의 블로그와 지인과의 대화가 생각나서 나도 모르게 손에 들게 되었다. 조력자살이라는 생소한 용어, 그리고 '나는 안락사를 선택합니다' 라는 문구가 눈길을 끌었다.

 

 

 작가는 미야시타 요이치이다. 미야시타 요이치는 1976년생, 18세에 미국으로 건너가 서구권의 문화를 접하게 된 일본인 저널리스트 이다. 동양과 서양 두 가지 문화를 둘다 경험한 작가의 시선에서 조력자살을 객관적으로 바라본다.  

 


 

 조력자살. 인간의 의지로 목숨을 끊는 것은 다양한 용어로 불리고 있다. 사망을 결정하는 주체에 따라 개념이 나뉘는데 국내에서는 안락사 존엄사가 흔하게 사용된다. 안락사중에서도 진정제 투여나 근육이완제를 투여해서 죽음을 앞당기는 경우 '적극적 안락사'라고 하며, 환자의 연명치료를 포기하여 사망에 이르게 하는 것을 '소극적 안락사'라고 한다. 소극적 안락사와 존엄사의 경우 같은 의미로 사용된다. 

 

 서구권에서는 적극, 소극적 안락사의 개념외에도 자발적, 비자발적 안락사로 나눈다. 안락사라는 용어에 더해 조력자살, 조력죽음 이라는 용어도 사용하는데 조력자살은 죽음을 원하는 개인에게 의사가 약물처방, 또는 안내를 해주고 죽고자 하는 개인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행위를 뜻한다. 미국과 몇개 유럽국가에서는 이 조력자살(assisted suicide)의 개념을 말기 불치환자에게만 적용한 단어인 조력죽음(assisted dying)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기도 한다. 

 


 

 머언 그리스에서는 자살 또한 인간의 권리로 보고 자살허가제를 시행한 적이 있다고 한다. 제도화된 최초의 조력자살이었지 않을까 생각된다. 물론 국내에선 불법이다. 적극적 안락사를 허용하는 국가로는 네덜란드, 벨기에, 룩셈부르크, 캐나다, 미국의 몇개 주가 해당되고 조력자살을 허용하는 국가로는 스위스, 네덜란드, 벨기에, 캐나다 미국의 몇 개 도시가 있다. 

 

 

 여기에 외국인의 조력자살을 허용하는 국가는 스위스가 유일한 듯 하다. 스위스에는 라이프 서클과 디그니타스라는 큰 두개의 단체가 조력자살을 행하고 있다. 디그니타스의 경우 9,000여명의 회원 매년 200건의 조력자살이 시행되고 있다고 한다. 

 

 


 

 <11월 28일, 조력자살>은 작가의 저서 <안락사를 이루기까지>의 후속 편이다.  <안락사를 이루기까지>를 읽은 고지마 미나씨가 안락사를 받고 싶다며 작가에게 도움을 청하는 메일을 보낸다. 고지마 미나씨는 소뇌가 위축되어 모든 운동기능을 상실하게 되는 다계통 위축증을 앓고 있다. 이 병은 죽는 병이 아닌, 기약없이 서서히 운동기능이 마비되는 병이다.  

 

<작년 NHK 에서 방영된 다큐 고지마 미나씨의 조력자살 순간이다.> 

 

 책에서는 그녀가 작가에게 연락하여 도움을 청하는 것부터 스위스 여정에 올라 조력자살을 시행한 이후까지의 이야기를 다룬다. 작가는 조력자살 이라는 죽음의 형태는 무엇이 옳다 라고 하기보다 객관적으로 표현하려고 노력한다. 

 

아직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생각도 들지만, 그것 역시 결국 날마다 뺄셈을 해 가는 거겠지요. 이것도 못하게 됐다. 저것도 못하게 됐다. 할 수 있었던 일들에서 할 수 없어진 일을 빼 나가는거죠. 뺄셈하는 나날은 쓸쓸한 법입니다. 

뺄셈을 하다보면 무슨 수를 써도 줄어들기만 하니까요. 

 

 읽는 내내 고지마 미나와 가족들이 어떤 생각일지 상상해 보았다. 서두에 쉽게 목숨을 끊을 것 같다라고 써놨지만 그게 정말 말처럼 쉬운일 일까. 고지마 미나는 말기 암 이었다면 차라리 조력자살을 택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스스로 죽음을 택한 각오가 너무 크게 느껴져 가슴이 먹먹해졌다. 

 

 그녀는 스스로 택한 스위스에서의 조력자살을 나쁜 예라고 말했다. 일본에서 조력자살이 가능했으면 이렇게 시기를 앞당기진 않았을 거라고 말하며 자신의 병의 진행으로 자신의 생각을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하기 전에 서둘러 조력자살을 택한 것이라고 말했다. 

 

 병과 죽음에 대해 들었던 복잡하고 어렵던 생각들이 이 책을 통해 한 번 정리되는 기분이 들었다. 지금까지 유일하게 공평하다 여겼던 시간이 삶의 기한이 갑작스럽게 단축된 사람들에게 얼마나 불공평한 것인지, 인간은 얼마나 나약한 존재인지 뼈가 저리게 느껴졌다.

 


 

 올해가 가기전에 건강검진을 제대로 받아 볼 생각이다. 본래 간이 좋지 않기 때문에 6개월에 한번씩 초음파를 하라고 권고 받았으나, 귀찮아서 미뤘는데 그것도 잘 챙겨야겠다. 그리고 다시 돌아오지 않을 지금에 충실하기로 마음먹었다. 더 재미있게 즐겁게 '지금'을 보내야겠다. 고지마 미나씨의 마음처럼 49/51 만큼 열심히 살았다고 느낀다면 나도 그런 순간이 오면 망설임 없이 선택할 수 있을 것 같다.  

 

 <11월 28일, 조력자살> 우리가 쉬쉬하는 죽음에 대해, 안락사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볼 수 있게 해준 책이다. 당장 네이버에 안락사를 검색해보면 얼마전 동물보호 단체에서 무분별한 안락사를 자행한 동물 단체 대표에 대한 이야기만 나온다.

 

 개인적으로는 최악의 상황에 닥친 사람들을 위해 우리 사회가 조력자살이라는 선택지를 만들어 줬으면, 최소한의 논의라도 할 수 있는 장을 만들어 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국내에선 현재 100여명의 사람들이 조력자살 단체에 가입하고 기다리고 있다. 지금까지 한국인 두명이 먼 타지인 스위스에서 조력자살을 했다고 한다. 

 

 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