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 김초엽, 장르를 초월한 따듯한 이야기

 친한 친구는 우울할때면 데이빗 보위의 Space Oddity를 듣는다고 했다. 1969년 발표된 이 곡은 톰 소령이라는 우주비행사가 지상관제소와 교신하는 내용을 가사로 담고 있다. 우주로 무사히 발사된 톰 소령은 작은 우주선에서 자신의 무력함을 느낀다. 우주선은 달을 지나 지구에서 계속 멀어지지만 톰소령이 할 수 있는건 없고, 지상과 교신도 끊기게 되는 내용.

 

 

 그녀는 크리스 햇필드의 버전을 좋아한다고 했다. 실제 우주정거장에서 어쿠스틱 기타를 들고 둥둥 떠다니며 노래를 하는 그는 누구보다 우주의 고독을 가까이 느꼈을 것 같다. 우주앞에 우리는 얼마나 작고 무력한 존재인가. 

 


 

 우주. 얼마나 멋진 단어인가. 누군가 우주가 무엇이야? 라고 묻는다면 사전적 의미를 단박에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몇 이나 있을까. 그만큼 우주란 우리에게 아직도 표현하기 벅차고 먼- 미지의 영역이다. 오늘 소개할 책은 이런 우주를 배경으로 이야길 펼쳐나가는 SF소설. 김초엽 작가의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이다.  

 

 하지만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조차 없다면 같은 우주라는 개념이 대체 무슨 의미가 있나? 우리가 아무리 우주를 개척하고 인류의 외연을 확장하더라도 그곳에 매번 그렇게 남겨지는 사람들이 생겨난다면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조차 없다면 같은 우주라는 개념이 대체 무슨 의미가 있나? 우리는 점점 더 우주에 존재하는 외로움의 총합을 늘려갈 뿐인 게 아닌가?

 

 이 책은 출간과 동시에 여기저기서 읽어보라는 추천이 끊이질 않았다. 책은 19년도 6월에 출간되었으니 약 1년 3개월간 추천 받아왔던 책이다. 왜 남들이 재미있다고 추천하면 절대로 보지 않는 심리적 반발심이 생길까. (청개구리 심보로 아직도 보지 못한 영화와 소설이 너무나도 많다.)

 

 결국엔 안 읽었을 것 같지만 결국 읽게 되었는데 젊은작가상 수록작인 <인지공간>으로 커다란 호감이 생겼으며, K작가 이슈로 문학동네와 창비의 책과 거리두기를 하게 되면서 허블 출판사에서 나온 <우.빛.속>을 접할 수 있었다. (해당 이슈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점에 대해 지적한 거의 유일한 작가라 더욱 호감이다.)

 


 

 워낙 잘 썼기 때문에, 금방 읽힌다. 실로 대단한 이야기다. 한장 한장 넘기기가 아쉬웠다. 나는 테드 창의 소설만큼이나 좋았다. 장르를 뛰어넘는 소설이다.

 

 

 책을 잠깐 살펴보면 7개의 단편 소설집이고, 표제작은 4번째에 수록되어있다. 주로 우주를 배경으로 하는 이야기들이다. 보면서 자꾸 테드창이 떠올랐다. 테드창이 한국 사람이었다면 김초엽 작가처럼 글을 쓰지 않았을까. 

 


 

  우주가 주제가 아닌 소설들 또한 좋았다. 그 중에서도 가장 인상깊게 읽었던 소설은 '감정의 물성'이다.

 

 감정의 물성이라 불리는 어떤 감정을 느끼게 해주는 물체가 유행하기 시작한다. 예를들어  '편안함'을 사서 그 물체를 만지면 편안함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편안함', '행복', '사랑'과 같은 긍정적인 감정만 팔려나갈 것 같지만 의외로 '분노', '증오', '우울'과 같은 부정적인 감정들도 잘 팔려나간다. 주인공은 이 현상을 바라보며 감정과 소비에 대해 생각한다.

 

 '인간은 감정에 통제받는 것인가? 아니면 감정을 지배하는 것인가?' 에 대한 질문이 인상깊었다. 소비의 목적이 다양한 감정을 향유하기 위해 행해지는 것(슬픔이나, 분노, 증오, 공포 까지도)이라는 표현은 내가 그간 생각하고 있던 소비와 감정이라는 단어에 전혀 새로운 시각을 제공해 주었다. 

 


 

 표제작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과 <나의 우주 영웅에 관하여>도 좋았다. 우주라는 무한한 공간에 사람이라는 성질의 가루를 한- 소끔 슥 뿌려 놓고 먼 우주로 가루들이 반짝이며 멀어지는 걸 보는 듯 한 느낌.

 

 <우.빛.속>은 SF스킨을 씌운 단편 고전문학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 읽고 나서 찾아본 김초엽 작가의 이력에 기분이 좋았다. 그녀는 나보다 어렸으며, 똑똑했고, 앞으로도 좋은 소설을 쓸 것이기 때문이다. 

 

끗- 

 

+ 소설 속 대사가 혁오의 2집 Silverhair Express 리믹스에 통째로 들어가 있다. 장기하의 나레이션과 우주스러운 기타연주가 잘 어울린다. 책을 읽고 듣는다면 뭔가 더 찡하게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