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소리 44# 화와 독선, 예의

#화

 나는 화가 많은 편이다. 자존심도 쎄고 열등감도 많다. 그래서일까 일반적으로 생각하면 아무렇지도 않을  일상의 말도 나에게선 날선 반응을 이끌어 낼 때가 있다.

 

 내가 화내는 경우는 중시하는 가치에 대한 비아냥과 멸시를 느낄 때이다. 보통은 나도 모르게 방어기제처럼 발동해서 상대방에게 정색하며 더 큰 비아냥(내가 싫어질 정도로 쎄게 말하는 경향이 있다.)으로 돌려준다. 내 큰 화를 받은 이들은 "별것도 아닌걸로 정색하고 그래' 라던가 '넌 뭐 이런걸로 화를 내냐', '과민반응' 등의 반응으로 화답하는데, 그때마다 깍여 나간 내 자존감과 내가 좋아하는 사람에게 큰 화를 냈다는 죄책감에 상처만 남게 된다.

 

좀 더 유하게 받아 농담으로 돌려 그의 저의를 그대로 상대에게 돌려주는 능력이 필요하다. 

 

 


 

#독선

 요즘은 아버지와 대화할 기회가 많아졌다. 대화를 하면서 충돌이 자주 일어나곤 하는데 성격적 단점은 아버지의 영향을 받은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아버지는 말 그대로 '최씨고집'을 몸소 실천하시는 분이다.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건 (그것이 설령 잘못 되었더라도) 큰 소리를 내서 대화를 종결시킴으로 자신의 의견을 관철한다. (최씨고집의 최씨는 '동주 최씨'로 우리 최씨와는 본관이 다르다.) 이제 나이가 드셔서 그렇겠거니 하고 이해하면서도 종종 답답하기도 하다. 가끔은 나도 모르게 큰 소리를 내는데 아버지의 모습이 떠오를 때가 있다. 유전은 무섭다. 독선을 경계하자. 

 


 

#예의

 얼마 전 출근길 만원 지하철에서 다른 사람의 조롱섞인 화를 받았다. 여느때와 마찬가지로 핸드폰을 하고 있었는데 미아사거리부터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유독 사람이 많은 날이었다. 그날은 지하철에서 불쾌할 수 있는 경우를 전부 몸소 체험하고 있었다. 담배냄새나는 아저씨들, 백팩으로 허리 누르기, 들어오려고 안간힘을 쓰는 사람들, 사람에 떠밀려 몸이 닿을때마다 벌레보듯 나를 바라보는 어떤 아주머니. 꾸깃꾸깃하게 꾸져진 상태로 더이상 밀리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며 핸드폰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어떤 사람이 나에게 말을 걸었다. 

 

  '저기요, 뭐하나 물어봅시다.'  라고 굉장히 크게, 진중한 목소리로 질문을 던졌다.

 

 나는 평소에 길에서 모르는 사람과 말하는걸 혐오에 가까울 정도로 꺼려 한다. 만원 지하철에 달갑지 않은 표정의 사내가 말을 건다니 정말 불쾌했다. 그 남자는 뾰룽퉁한 표정으로 말을 이어갔다. 

 

 '그렇게 지하철에서 사람 면상에 들이대고 핸드폰 하면 좋아요?' 

 

 훈계하는 듯한 말투. 묵직하고 큰 목소리, 단정된 머리, 도수 높은 안경, 셔츠에 젊어 보이게 매치업한 캐릭터 맨투맨과 연식되어 보이는 블레이져 그리고 복장과 어울리지 않는 백팩이 그의 직업을 짐작케 했다. 이 사람은 강단에 서는 사람이다. 라는 생각과 동시에 내 핸드폰이 그 사람을 불쾌하게 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그도 나만큼이나 짜증이 났겠지. 

 

나는 즉시 놀라며 '죄송합니다' 하고 핸드폰을 내렸다. 

 

 그랬더니 그 사람은 화가 덜 풀렸는지, '아니, 핸드폰을 해도 된다고, 근데 그렇게 핸드폰을 사람 면상에 대놓고 하는게 맞냐는거지, 좀 내리고 하면 좋잖아' 라고 말했다. 그쯤에서는 나도 화가나서 '아뇨, 괜찮습니다. 그만하시죠.' 라고 말했다. 그는 뭐라 꿍싯꿍싯 거리며 쿨하다는 표정으로 껌을 씹었다. 

 

 정중한척 '저기요 뭐좀 물어봅시다'로 시작해서 모든 사람들이 들을 수 있도록 큰 목소리로 이야기를 꺼내고, 핸드폰으로 뉴스를 보던 내 행동을 '면상에 들이대고'로 꼬아 '좋아요?'로 질문하며 내 행동에 고의성을 부여하는 그의 저열한 질문이 굉장히 아쉬웠다. 그 서로 짜증나는 상황에서 배웠다는 사람이 그런식으로 다른 사람의 감정을 해치다니, 그 짧은 순간 내가 피해를 줬다는 미안함은 짧았고 인간에 대한 환멸은 길게 느껴졌다.  

 

 '저기 얼굴에 핸드폰이 좀..' 정도만 말했어도 나는 놀라며 진심으로 사과하고 핸드폰을 내렸을 것이다.

 

 내가 좀 더 극적인 상태였다면, '그 쪽 면상이 제 핸드폰을 위협하고 있다고는 생각해보지 않으셨어요?' 라고 되묻거나 '제가 먼저 타고 먼저 핸드폰을 들고 있었습니다. 제 얼굴에 면상을 들이 미신건 그쪽 같은데요?' 라고 되받아 쳤을 것 같다. 쓰고보니 실제로 했던 내 대처는 나쁘지 않았던것 같다. 위 대사로 맞받아 쳤으면 그날 인터넷에 영상이 올라와서 '요즘 것들 쯧쯧', '핸드폰 면상에 들이대고 하는 사람의 당당함' 따위의 글이 올라왔을지도 모르겠다. 저열한 사람에게 일일이 저열하게 응대할 필요는 없다. 

 

 예의를 갖추자. 

 

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