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중소기업의 OKR 적용사례 '내일 발표입니다. 오늘 작성해주세요'

사장만 돈번다는 전형적인 중소기업. 의심많은 사장 휘하에 가족경영을 하고 있다. 안그래도 작은 연봉은 13으로 잘게 쪼개고, 연차제도도 법적으로 저촉받기 전까진 믿도 끝도 없는 7일. 오너 마인드는 야근을 안하면 일을 안한다고 생각하고, 연봉을 올려 달라고 하면 배가 불렀다고 생각한다.

 

<화제의 웹 드라마 좋좋소>

 

 전형적인 대한민국의 중소기업은 우리가 이 업계 구글이니 삼성이니 하는 헛소리를 하곤 하는 것이 특징이다. 그리고 잘나가는 세계적인 기업들이 하는 좋아 보이는 경영 시스템을 도입하려고 부산스럽게 애를 쓴다.



오늘은 어느중소기업의.. 시리즈는(시리즈로 써볼 생각) '좋소기업의 OKR 적용기' 다. 우리 사장님이 꽂힌 목표설정 기법 '실리콘벨리에서 대박이 났다'는 구글이 사용하고 수 많은 IT스타트업들이 사용한다는! OKR 기법! 우선 OKR이 뭔지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 말하자면 KPI에 염증을 느낀 돈을 더 벌고 싶은 중소기업 꼰대 사장들이 새롭게 직원을 갈구기 위해 적용시키려는 해외의 목표관리 기법중 하나다.

 

OKR은 Objective(목표), Key Result(핵심 결과지표)의 앞자리를 딴 단어다. ㅇㅇ한 상태로 되고 싶단 O가 있으면 그 상태에 맞는 측정 가능한 KR을 정해서 목표를 이뤄가는 것! 이 과정을 위해, 팀의 범위를 정하고, 팀 미션을 정하고, 목표를 정하고 등의 다양하고 유연한 협의 과정들을 거쳐야 한다.
(올해부터 OKR을 해보자! 하하 보고해! 이게 아니다.)

 



 작년부터 회사에서는 요란스럽게 OKR이 대단하니 어쩌니 하면서 유난을 떨었다. 도전적인 목표를 잡고 팀원들이 협력해 나가는 이 아름다운 구조. 도전적인 목표! 얼마나 아름다운가. 이 회사를 다닌지 3년째. 회사는 내 인생에서 도전이란 걸 지워버리게 만들었다. 답없는 연봉협상, 회사 매출을 승승장구하는데 내 연봉은 '회사가 어려워서... 내년에는...' 이라는 x소리! 그 x-박봉도 1/13비트로 쪼개는 리듬의 마법사같은 연봉체계! 유년기 할아버지 제사날 고모들이 주는 것 같은 소소한 용돈 같은 성과금!을 보유한 회사에 무슨 직원들이 정하는 도전적인 목표란 말인가! 도전적인 목표라는 말에서 역설적이게도 다들 미소를 지었다.

 이걸 하자고 하는 사장단을 제외한 모든 조직 구성원은 질색을 했다. 어차피 하는 거 좀 맞춰주잔 식으로 이야기해서 어차피 해야하는 연간 목표를 분기별로 잘라 그럴듯하게 OKR을 만들어 냈다. 년초에 모든 팀이 급조해서 팀 단위로 자신들의 OKR을 발표했고, 잊었다.



 그리고 3개월 후 사장단은 한가해졌는지 갑자기 OKR을 점검하고 다시 수행하자고 했다. 안그래도 바쁜 직원들은 욕을 했고, 하루전날 한번도 고민한적 없는 1분기 OKR 결산과 2분기 OKR 계획을 세웠다. 그렇게 다음날 보고를 했고, 사장단은 몇몇 팀에서 잘했다며 박수를 쳐줬다(?). 그들이 잘한건 전날 빠르게 정리한 것 이다. 그렇게 전날 빠르게 잘 정리한 팀의 OKR 표(?)가 전부서에 배포되었고 그렇게 또 OKR은 잊혀졌다.

 



3개월 후 어느날, 오전 10시. 상급자에게 사내 메신저가 왔다.

"오전까지 OKR회의자료 제출해달란다."

"네?"
"OKR이요? 그때 영업부 양식 공유해주신다고 한건요?"

"아 맞다! 그거 안줬구나 잠깐만"




 햐.. 기가찬다! 그렇게 거짓 OKR을 만들기 위해 오전 2시간을 날렸다. 정말 혁신적인 제도다. 구글과 굴지의 IT기업에서 중소기업이 자신들의 경쟁사가 되지 못하게, 만들어낸 거짓 수단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열악한 인건비에 없는 복지 덕분에 퇴사자는 늘어가고 신규입사자는 없는 상황. 이딴 쓰잘데기 없는 일에 더이상 신경쓸 여력이 없다. 도전적인 목표는 커녕 하던 일도 제대로 안 돌아가게 생겼다. 오전에 제출하고, 타 부서 동료에게 이런 악폐습은 없어져야 한다고 (어쩌다 보니 외국의 경영 혁신 시스템이 악폐습이 되어버렸다 ^^.. ) 토로했다. 다른 부서 동료는 팀장이 알아서 했는지 자신들은 전달받은거 없다고 하며 좋아했다.



그날 오후, 퇴근 1시간전
오전에 OKR이라는 악폐습을 함께 토로했던 동료는 당장 퇴근 1시간을 앞두고 OKR 회의자료를 제출하라는 상급자의 지시를 받았다고 알려왔다. 우리팀은 양식이라도 공유해줬지 그 팀은 백지란다!


하하! 물론 오너의 의지를 수행하지 못하는 직원들의 무능일지도 모르겠다만, 받는 만큼 일하기 마련이다. 우리가 지분이 있거나 인센티브가 있는것도 아닌데 왜 도전적으로 일해야 하는가.

OKR! 참 도전적인 낭비 아닌가!

마지막으로 OKR을 도입하려는 기업 오너들에게.
사장님, 좋소좋소좋소기업에서는 어떻게 월급만큼 알차게 일 시킬 수 있을지 고민하시면 됩니다.
OKR을 적용하지 않는 것이! 회사 전체 생산력 향상을 위해 도움이 될 것이에요!

너도 알고 나도 아는 이 사실을 왜 우리 사장님만 모르나 깔깔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