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31일 아는 후배가 죽었다. 친하진 않은 후배였다. 뒤늦게 대학에 간 나는 학교에서 볼 좀 차면서도 나와 결이 비슷한 학과 친구, 후배들을 우리 축구팀으로 불러들였다. 축구팀은 내 사적인 영역이었고 학교는 공적인 영역이었으므로 그 무엇보다도 결이 맞는 친구들만 불렀다. 결이 달랐던 그 후배는 우리 팀에 들어올 입장권을 받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어느 날 좋아하던 여자후배의 과제를 위해, 축구를 좋아하지만 결은 조금 달랐던 그 후배에게 과제의 공유를 요청하며 언제 한 번 우리 팀에 와서 뛰자고 ‘언제 한 번 밥이나 먹자’는 뉘앙스로 이야기했다 그게 시작이 되어서, 우리 팀에서 그 후배의 가장 친한 사람은 내가 되었다.
근조화환을 보내는 문구에 무엇을 썼으면 좋겠냐는 축구팀 회장의 전화가 왔다. 근조화환에 무슨 문구란 말인가. 그냥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하고 단체명을 쓰면 되는게 아닌가 하는, 그리고 그 후배와 친하지 않은데 나한테 이런 걸 물어보는게 솔직한 심경으로 조금은 짜증스럽게 느껴졌다.
나와 친한 사람들은 알겠지만(안친한 사람은 이 글을 볼 수 없다) 나는 공과 사의 경계가 확실한 사람이다. 친하지 않은 후배는 공적 영역에 머물던 사람이었다.
장례식장에서 그 후배의 아버지를 마주하고는 나는 스스로를 뭐라고 소개해야 할지 망설였다. 축구팀 아는 형?, 학교 선배?, 아는 형? 마침 결이 같은 학교 후배이자 축구팀 동생과 함께라 우리는 축구팀에서 왔고 나랑 얘는 학교 선배입니다. 하고 친하지 않은 후배의 아버지에게 자기소개를 했다. 아버지는 충혈된 눈으로 와줘서 고맙다고 말씀하시며, 레이 타고 축구 다닌다고 해서 티볼리로 차를 바꿔줬는데.. 하며 우리 팀과 아는 후배와 아버님이 아는 이야기를 꺼내셨다. 아버님이 말씀하신 그 이상도 이하도 나는 그 후배에 대해 아는 바가 없었다.
후배의 투병생활은 길었다. 몇 년전에는 의사소통이 불가능해서. 세상을 떠날 날이 머지 않았음을 알리는 장문의 문자가 왔다. 내가 이런 문자를 받을 자격이있을까 하는 마음에 쉬이 병문안이나, 안부인사를 전하지 못했다. 그는 친하지 않은 후배였다. 불편한 마음이 한구석에 있었다. 나보다 어린 누군가를 만나면 건강을 항상 챙기라고 진지한 표정으로 말하던게 그 문자를 받은 이후였다. 아직 벚꽃이 피기전에 부고가 날아왔다.
거제도에서 태어나 서울 D중과 H고등학교를 거치고 이 후 S대학을 다니며 봉사활동과 축구를 사랑했던 따뜻하고 열정적이던 청년. 그리고 D그룹 교육팀에서 기업교육가로서의 성장을 시작하며 꿈을 이루는 행복을 알던 청년. 그런 삶을 살아왔던 J씨가 올해 32세의 나이로 이세상을 떠나 하늘나라로 갔습니다. 고인의 삶 동안 인연을 맺을 수 있어서 영광이었고 감사할 따름입니다.
친하지 않은 후배와 만나지 않은 건 거의 7-8년정도가 지났다. 건강할 때도 개인적인 연락을 한 번도 하지 않았고, 투병을 알리면서도 개인적인 연락을 하지 않았다. 부고에는 짧았던 그의 삶이 한 문단 정도로 정리되어 있었다. 장례식장은 조용했다. 내가 사회적으로 인연을 맺은 가장 젊은 사람의 죽음이었다. 갑자기 비통한 기분이 들어섰다.
함께 학교를 다녔던 후배들은 눈물을 흘리며 밥을 먹고 있었다. 조금 처음 느껴보는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그러다가 오늘 일을 글로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눈물을 흘리기엔 너무 멀었고, 모른 척하기엔 조금 가까웠다. 짧았던 그의 삶을 내가 조금이라도 기억해주는 것이 마음 한 켠에 있던 죄책감을 지우는 일이라고 생각이 들어서일까. 쓰면서도 잘 모르겠다.
내 생에 처음인 젊은 지인의 죽음이었다. 비통한 기분이 든다. 살아온 삶이 즐거웠길, 평안이 잠들길, 남은 가족들이 행복하길. 24. 3. 31 세상을 떠난 후배 J를 기리며.
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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