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소리 #35 코인세탁소와 태도에 관하여

 세탁기가 고장났다. 4인 가족의 무거운 옷가지들을 열심히 돌리다가 무리한게 틀림 없다. 안쓰러운 마음에 그를 고쳐줄 테라피스트를 불렀다. 성수기인가 다음주 월요일이나 방문이 가능하다고 한다. 암담함이 몰려왔다. 다음주 월요일 까지 세탁물을 손세탁하거나 하지 못한다 생각하니 세탁기가 고장났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보다 속이 상했다.

 




 얼마 전 직장동료와 전 진장동료가 포함된 카톡방이 하나 만들어졌다. 거의 무한에 가까운 수다를 떨 수 있을 것 같지만 다들 배려심이 깊어서 일까 업무 중에만 가동된다. 오후 6시 이후나 주말이 되면 잠잠한 카톡방을 가끔 눌러보는데 꽤 재미있다. 카톡방 일원들은 책을 좋아한다. 서로 책 추천도 다 읽을 수 없을 정도로 하곤 하는데 얼마 전 '태도에 관하여' 라는 책을 추천 받았다. 



 태도. 얼마나 중요한가. 대통령도 강조 했다. 태도가 본질이다. 무엇을 대할때 태도에서 내 모든 것이 들어난다. 태도는 말과 행동을 넘어선 것으로 본질적인 내 내면을 그대로 노출하게 된다. 그래서 '태도에 관하여'라는 책이 더 끌렸는지도 모르겠다. (요즘 경망스럽게 행동하는 것 같은 스스로를 자제 하기 위해서라도 읽어보고 싶었다.) 


 책은 알라딘 중고서점에서 구매했다. 나는 알라딘에 꽂혀있는 책들이 얼마나 많은가를 살펴보는 걸 좋아하는데 태도에 관하여는 5권정도 재고가 있었다. 이 정도면 적당한 수요와 공급이 있는 좋은 책일 것이다. 



 기분좋게 가장 깔끔해 보이는 책으로 한권 삿다. 집으로 돌아와서 세탁기와 쌓여있는 빨래를 보고 코인세탁소가 번뜩하고 떠올랐다. 마침 비도 안오겠다 오랜만에 브롬톤을 꺼내기로 했다. 브롬톤 뒤 짐받이에 보스턴백을 장착하고 가득 빨래를 넣었다. 보스턴 백 위에 태도에 관하여를 올리고 끈으로 동여맸다. 


 날은 언제 비가와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꾸물꾸물했다. 서둘러 페달을 밟아 나갔다. 100미터쯤 갔을때 입이 허전한게 느껴졌다. 마스크를 안끼고 나온 것. 부랴부랴 약국으로 가서 마스크를 구매했다. 마스크를 쓰고 강북구청 옆에 있는 클린토피아로 향했다. 코인세탁은 처음 해봐서 굉장히 설렜다. 보통 혼자사는 사람들이 많이 오는거 같던데. 두근두근한 마음으로 도착. 빗방울이 한두방울 떨어졌지만 그냥 맞으면서 도착했다. 


 도착해서 빨래를 내리려고 짐칸을 봤는데 책이 없었다. 태도에 관하여가 오는길에 끈에서 빠진 것. 아뿔싸. 그렇게 쎄게 몰지도 않았는데.. ! 세탁기 돌려놓고 우아하게 기다리려고 했건만.



 일단 자전거에서 빨래를 내려 코인세탁소로 들어갔다. 코인세탁기를 가동하는 비용은 4500원이다. 이정도면 굳이 코인세탁소라고 불러야하나 싶었다. 수중에 1만원권 밖에 없어 동전교환기에 넣었다. 세차게 500원 20개가 기계에서 떨어졌다. 주머니에 주섬주섬 줏어 넣고 세탁기 앞에서서 동전 9개를 넣었다. 500원 더 올리고 그냥 지폐만 받았으면 좋겠다 란 생각을 하면서 세탁기가 돌아가는 것을 지켜봤다. 빨래감을 좀 더 모아서 가져올걸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다시 밖으로 나와 자전거를 타고 왔던길을 거슬러 올라갔다. 비가 오기 시작했다. 쭉 거슬러 올라가 봤는데 태도에 관하여는 없었다. 이미 누가 집어간 것 같았다. 눈물을 머금고, 다시 수유역 알라딘으로 들어갔다. 브롬톤은 고이 접어서 알라딘 데스크에 놓고 이미 위치가 익숙한 D10 책장으로 가서 태도에 관하여를 가장싼 것으로 집었다. 



 가격은 5400원. 카운터에 직원이 오길 기다리면서 주머니에 손을 넣었는데 마침 500원짜리 동전이 묵직하게 느껴졌다. 점원이 다가와 재 구매인데 맞으세요? 라고 물어봤다. 속이 쓰렸다. 11개의 500원짜리 동전을 탑 처럼 쌓아서 멋지게 점원에게 밀어줬다. 카지노에서 올인하는 스파이처럼. 점원은 짐짓 당황한 눈빛으로 동전을 들고 갯수를 확인했다. 100원을 거슬러 받았다. 세상 행복했다. 동전을 소비한게 좋았다. 잃어버린건 뭐 어쩔 수 없는 일이라 잊은지 오래였다. 




 다시 부랴부랴 코인세탁소로 향했다. 30분이 지났을까봐 걱정이었다. '누가 우리 집 옷가지들을 훔쳐가면 어쩐담' 하는 생각에 초조했다. 자전거를 접어서 세탁소 안으로 들고 들어갔다. 세탁 아직 5분정도 여유가 있었다. 원래 계획대로 우아하게 태도에 관하여를 펼쳤다. 집중이 되질 않았다. 머릿말에 누가 줄을 그어놓았다. 짜증이 치밀어 올랐지만 이게 또 중고책 사는 재미 아닐까 하며 뒷편엔 가급적 줄이 없길 바랬다. 



 세탁기가 다 돌아갔다. 건조하는데에도 한 4-5천원의 돈이 들어가기 때문에 건조는 포기했다. 비닐을 하나 사서 세탁물을 담아 집으로 향했다. 오는길은 마음이 한결 가벼웠다. 집에와서 빨래를 널고 태도에 관하여를 펼쳤다가 침대위에서 잠이 들었다. 나른한 주말 오후였다. 


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