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소리 #39 꼬리표를 제거하며. 혐오에 대해

#한남은 과학이다?

 얼마 전 '한남은 과학이다'라는 말을 들었다. 어떤 한국 남성이 사용하는 것을 보게 되었는데 내 주변에 한남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더욱 더 충격적이었다. 한남은 한남충, (한국 남자 + 충)의 준말로 한국남성 전체를 비하하는 멸칭이다. 남성혐오 사이트 메갈리아, 워마드 등 에서 만들어진 용어로 반대 급부의 멸칭 김치녀에 대응책으로 한남이 등장하게 되었다. 

 


 

 이런 특정 성별 전체를 비하하는 혐오단어를 그 성별에 속한 사람이 행하는 것을 보고 이 단어가 주는 의미가 희석되었거나, 대단한 자기비하 선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실제로 디시인사이드에서는 자조하는 의미로 한남이란 단어를 사용하곤 한다고 한다(그러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모든 문제를 특정 집단의 원죄로 해석함으로써 얼마나 편협하고 피곤한 삶을 살게 될 것인가하는 오지랖도 들었다. 

 


 

#충을 붙이는 것에 대해

 인격체에 충이라는 혐오를 붙이는 것 자체가 얼마나 위험한가. 다른 인격체를 벌레로 바라보는 사람의 정신세계는 과연 안녕할까. 이렇게 특정 집단이나, 성별, 계급, 계층, 개인에 무분별하게 라벨링하는 것은 정말 비 정상적이라 생각된다. 꼬리표를 붙이다. 꼬리표를 붙다. 라벨링하다. 프레임을 씌우다. 어떤 대상에 특성을 달아 일반화 시키는 일. 요즘 사회에선 만연하다. 분명하게 지양해야 하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늘어나는 라벨링, 꼬리표 붙이기 섣불리 무언가를 규정하는 일이 많아지는 것 같다. 

 


 

#성급한 일반화와 편견

 대학시절 나는 인간관계론 강의에서 '편견'이란 주제로 학우들과 이야기를 나눈적 있다. 편견. 당시 내가 가지고 있던 편견들은 흑인은 농구를 잘하고, 춤을 잘추고, 노래를 잘할 것이다. 보성과 벌교 사람은 주먹이 쎄다. 와 같은 특정 그룹을 나도 모르게 규정하고 있었다. 이런 꼬리표 붙이기(라벨링)을 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성급한 일반화를 저지르게 된다.

 

 성급한 일반화는 몇 개의 사례나 경험으로 전체를 단정하는 것에서 발생하는 오류를 말한다. 

 

 예를 들어 앞서 남성 범죄자가 저지른 범죄행위를 보고 '한남은 과학이다'라고 말한 것. 그 범죄자 1인이 전체 한국남자를 대표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성급한 일반화로 모든 한국남자를 잠재적 범죄자 또는 범죄자로 생각하게 만든다.  

 

 

 

 

 벌어진 범죄 현상의 원인과 해결방안, 예방법 등에 주목하는 것이 아니라. 행한 주최자를 특정하고 잘못의 원인을 해당 그룹에 전체에 원천적으로 뒤집어 씌우고 혐오하고 분노하는 것.

 

 한남은 과학이다. 라고 말하는 순간. 한남이 가지고 있는 의미를 사용자는 잘 알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을 포함한 한국남자들을 잠재적 범죄자로 만든 것. 얼마나 무서운 일인가. 

 

 

#매카시즘

 비슷한 예로는 빨갱이 몰이가 있다. 미국에서 벌어진 매카시즘이라는 공산주의자 색출 열풍 무분별한 매카시즘으로 수 많은 사람이 직업을 잃었다.

 

 매카시즘은 체제로 인한 분단을 겪고 있는 우리나라에서는 아직도 잘 먹히는 라벨링이다. 공산주의자 혐오를 이용해 모든 진보 인사들을 포함한 자신과 다른 정치성향을 가진이에게 종북 좌빨이라는 라벨링을 한다. 이 빨갱이 몰이로 자신들의 기득권을 유지하는 것이다. 이런 라벨링 작업을 통한 권력의 유지는 절대 나라 전체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런 라벨링은 혼자만 하고 있을 때는 개인의 문제이지만 '한남은 과학이다' 처럼 밖으로 내뱉었을 때 더욱 큰 문제가 된다. 사회속에서 저런 말들이 빈번하게 노출된다면 집단심리, 동조현상들에 의해 그렇게 생각하지 않던 사람도 물들 가능성이 높다.

 

 내가 생각하는 진짜 문제는 동조현상으로 라벨링을 받아들인 사람들이(몇 몇개의 사례나 경험도 없이 단순하게 노출된 댓글이나 주변의 말을 듣고 일반화를 하는 경우) '한남은 과학이라던데?'를 가지고 모든 현상을 바라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문제의 구체적인 원인과 결과를 보기도 전에 라벨링에 붙어있는 '한남'을 원인으로 지목하면서 특정 계층을 혐오하는 것으로 복잡하고 어려운 문제를 단순화 하는 것이다.

 

 혐오를 통한 분노 문제를 바라보는 것. 그것은 답답하고 복잡한 문제에 직면하는 개인이 취하기에 가장 즉시적이고, 시원하게 느껴지는 말초적인 반응이다. 하지만 그렇게 분노하고 혐오한 뒤에 진짜 문제가 해결 되었는지 바라보면 그렇지 않다. 더 혐오하고 더 분노해야 할 것들만이 남아있다. 혐오와 분노가 무한대로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아직 세상은 밝고 아름답다. 위 언급한 혐오와 분노는 특정 인터넷 게시판과 댓글창, 그리고 국회정도에서나 볼 수 있다. 하지만 얼마전 인터넷 용어인 '한남'을 실 생활에서 사용하는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는 혐오와 분노가 시시각각 커지고 있단 경각심이 들었다. 

 

 목수의 눈에는 모든 문제가 못으로 보인다고 했다. 자기가 할 줄 아는 것이 망치질 뿐이면 모든 문제가 튀어나온 못으로 보인다는 이야기이다. 혐오와 분노만 하는 이들에게는 모든 문제가 혐오와 분노일 것이다.

 

 나부터 시작해서 라벨링을 제거하는 작업을 해야겠다. 나에게 붙어있는 라벨링이거나, 상대방에 붙였던 라벨링을 제거해서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고 싶다. 

 

 이 글을 쓰는 도중 마무리를 어떻게 해야되나 고민이 깊었는데 홍선생이 아이디어를 주었다. 어차피 끝까지 다 읽는 사람은 몇 없을테니, 아무튼 그렇다는 이야기다. 하고 끝내라고. 나는 다음화에 계속. 이라고 쓰고 다음화를 안 쓸 생각이었는데 홍선생의 아이디어가 더 마음에 들었다. 아무튼 그렇다는 이야기다. 

 

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