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제 막 대학을 졸업하고 회사에 열심히 다니고 있었다. 어느날 눈을 뜨자 낯선 장소다. '여긴 어디지?' 몸 곳곳에 문신이, 주머니에는 온갖 메모와 사진들이 가득이다. 메모와 사진에 따르면 나는 이직하기 위해 애를 쓰고 있었다. 오늘이 면접날이라고 하는데 적힌 메모지를 따라 면접 장소로 향한다. 면접시간까지는 1시간이 남았다. 지하철에 탔다. 피로가 몰려 잠에 들었다. 지하철이 쿵 하고 흔들리는 소리에 눈을 떴다. '여긴 어디지?' 나는 왜 지하철에 타고 있지. 시간을 보니 오후 1시, 한창 회사에서 일하고 있어야할 시간인데? 혼란스럽다. 손목의 문신과 주머니의 메모로 내가 어디론가 이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으으 상상만해도 끔찍하다. '선행성 기억상실증'을 다룬 영화 <메멘토>를 봤다. 워낙 유명한 영화라 알수 없는 저항감에 안보려 했으나 리마스터링 이라는 거창한 문구에 끌려 보게 되었다.
선행성 기억상실증은?
선행성 기억상실증은 어느 시점을 기준으로 더이상 새로운 것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을 말한다. 단기기억이 장기기억으로 바뀌는 기능이 멈춰버린 것으로, 특정 시점까지의 기억을 가지고는 있지만 그 이후부터는 새로운 것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 1950년대 '헨리 구스타프 몰래슨'이라는 27살의 젊은 청년은 심한 간질을 앓고 있었고, 당시 유행하던 뇌절제술(정신질환의 원인이 되는 뇌를 잘라 근본적으로 치료한다는 사실상 실험)을 받게 되는데, 헨리 구스타프 몰래슨은 측두엽을 절제한다. 집도의 였던 스코빌 박사는 뇌의 좌반구와 우반구를 연결하는 부위의 해마 대부분을 제거했다. 몰래슨은 모든분야에서 정상적인 기능을 했지만 새로운 기억을 만들어내는데는 실패했다. 30초이상 새로운 기억을 하지 못한 그는 여든 두살까지 30초의 순간만을 살다 죽게 된다. 이 수술(실험)으로 뇌의 기억과 학습에 대한 실마리가 풀렸다고 한다.
영화는 선행성 기억상실증을 앓고있는 전직 보험조사관 레너드의 복수를 다룬다. 그는 약 10-15분정도만 기억이 유지된다. 그래서 온몸에 문신을 하고, 메모를 하고, 사진을 찍어둔다.
'기억을 잃어 온몸에 문신으로 기억을 더듬어 살아가는 남자!'라는 대강의 설정은 알고 있어서 새로울건 없었지만 흑백과 컬러로 과거와 현재, 시간의 흐름을 가지고 노는 컷들의 배치를 보고는 연신 '미쳤다'라고 생각했다. 아! 감독은 크리스토퍼 놀란이다. 역시는 역시! 굳이 설명은 안해도 될 감독.
가이피어스가 주연 레너드를 연기한다. 30대의 가이피어스를 볼 수 있다. (메멘토 촬영당시 가이피어스의 나이 34세) 눈을 떴을 때 기억을 잃어 당혹스러워하는 눈빛 연기가 발군이었다. 오버핏 슈트의 힙함은 20년된 영화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
첫 장면 폴라로이드 사진을 흔들면서 시간을 역행하는 장면부터 인상적이었다. 감독이 앞으로 시간을 가지고 놀 예정이므로, 단단히 각오해! 하고 출사표를 던지는 듯한 오프닝. 시간과, 기억, 복수에 대한 이야기임을 그 짧은 순간 안에 표현해 낸다.
처음 흑백씬이 나올때만 해도 약간 혼란스러웠지만 조금만 보다보면 진실이 무엇인지 궁금해서 안달이 나게 되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아마 극중 레너드와 관객은 같은 마음이 아닐까. 갑작스럽게 등장하는 주변인물들과 사건을 기억하기 위해 필사적인 주인공.
애덤샌들러와 드류베리모어 주연의 영화 <첫키스만 50번째>에서는 선행성 기억상실증으로 가볍게 웃으며 즐길 수 있는 로맨틱 코메디를 만들었지만 <메멘토>는 긴장하게 집중해서 봐야하는 몰입도 있는 스릴러를 만들어냈다. 같은 주제를 가지고 이렇게 장르를 가를 수 있는 것도 영화의 재미다.
레너드는 결국 자신의 모든 복수를 모두 마쳤다. 하지만 그것도 기억하지 못하고, 다시 또 누군가를 평생 원망하며 추적하고 있을 것 같다.
+ 폴라로이드 카메라 사고싶다.
++ 오버핏 슈트 사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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