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리뷰] 남아있는 나날 '시간과 나이듦에 남겨지는 것'

 알프레도. 어릴적 배트맨을 보면서 매번 느꼈던 궁금함. 왜 알프레도는 저렇게 극진하게 배트맨을 챙길까 하는 의문. 웨인일가에서 대를 이어 집사를 한드는 것. 심지어 능력도 엄청나다. 매번 왜 알프레도는 그 나이까지 집사를 할까 라는 의문에 사로 잡혔다. 뜻밖에 해답은 오늘 리뷰할 영화 ‘남아있는 나날’에 서 찾을 수 있었다. 

 

 

 영화는 동명의 소설 ‘남아있는 나날’을 원작으로 한다. 1989년 발표된 이 소설은 노벨상을 받은 일본계 영국인 가즈오 이시구로의 작품이다. 영국인인데 일본 이름이라 굉장히 이상하다. 어릴때 입양가 영국인으로 키워졌다고 한다.

 

 남아있는 나날은 1930년대 1차 세계대전의 종결부터 1950년 2차 세계대전 종결을 배경으로 하는 영국의 한 대 저택이 주 무대다. 

 

 주인공은 미스터 스티븐슨. 달링턴 가문의 집사. 스티븐슨은 영국 귀족 달링턴의 집사장이다. 달링턴은 영국 외교계의 거물이다. 스티븐슨은 달링턴 대저택을 진두지휘 하며 집안의 모든 일이 잘 돌아가도록 한다. 

 

 

 어느날 하녀들을 관리하는 총무가 다른 남자와 눈이 맞아 도망가 버려 스티븐슨은 새로운 총무를 켄튼을 채용한다. 

 

 직업적 사명감이 높은 스티븐슨은 그만큼 일에 대해서도 엄격하다. 다행스럽게도 지금으로 따지면 꽤나 답답하고 원칙주의자인 스티븐슨을 다른 직원들은 잘 따른다. 

 

 달링턴은 영국의 귀족으로 외교계에 큰 영향력을 행사한다. 극중에서는 1차 세계대전 직후 망해가는 독일을 측은하게 여기며 영국과 화친을 중재하기도 한다.

 

 

 수 많은 행사를 집안에서 치뤄내면서 스티븐슨과 켄튼은 서로 신뢰가 생긴다. 둘은 서로 미묘한 관계에 들어가려고 하지만 공과 사가 분명한 스티븐슨은 그녀에게 철벽을 친다.

 

 결국 스티븐슨의 마음을 열기 위해 노력하던 켄튼은 포기하고 자신을 좋아해주는 다른 남자와 결혼하며 달링턴 가문을 떠난다. 

 

 달링턴은 독일을 지지하다가 나치사상에 물들게 된다. 결국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고 달링턴은 매국노로 몰리고 각종 송사에 휘말려 폐인으로 생을 마감하게 된다. 

 

 망한 달링턴 저택은 붕괴 위기에 빠진다. 그러나 미국인 정치인인 루이스가 비싼값에 그 저택을 구매한다. 스티븐슨은 새로운 주인 밑에서 집안을 운영한다. 새로운 주인인 루이스는 스티븐슨에게 휴가를 권유하고 스티븐슨은 함께 일했던 켄튼을 만나러 서쪽으로 떠난다. 

 

 

 소설이 호평받은 만큼 영화 또한 수작이다. 우선 영화는 1900년대 영국의 시대상과 분위기를 잘 알 수 있다. 외교적 문제와 당시 사회 분위기가 적절하게 표현되어 있다. 투표권, 귀족에 의한 외교, 전쟁 직후의 분위기가 기가 막히게 묘사되어 있다. 

 

 하나의 예술처럼 보이는 집사의 세계도 놀라웠다. 단순하게 살림을 하고 주인을 모시는 것이 아닌 자신이 살고 있는 저택과 주인의 일 자체에 충성을 하며 어떤일에도 기꺼이 따르고 일에 사명감을 갖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영화는 단순히 집사의 일상만을 다루는 것은 아니다. 잘못된 길을 걷는 주인인 달링턴을 보며 도덕적 갈등을 겪으면서도 자신의 직업적 사명감에 의해 그것을 묵과하는 모습, 그리고 이후 사람들의 달링턴에 대한 물음에 자신은 잘 모른다라며 슬며시 책임을 피하는 듯한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고 자신의 직업적 사명 때문에 감정을 모르쇠로 일관하는 모습 또 여러차례 보여준다. 아버지의 임종을 집 행사 때문에 지키지 못한 것, 사랑하는 연인이 있었으나 자신의 신념 (공과 사는 지켜야한다는 쓸데없는) 때문에 사랑하는 연인을 놓치고 심지어 슬퍼하지 조차 못하는 모습. 

 

 

 결국 미스터 스티븐슨에게 남은건 지나버린 세월과 늙은 몸, 그리고 달링턴 저택 뿐이다. 나는 영화 초-중반부에는 자신의 임무를 충실하는 '집사'의 멋진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 멋진 모습은 영화 말미로 갈수록 정작 인생에서 중요한 것을 놓치고 늙어버린 쓸쓸하고 외로운 노인이 되는 과정인 것 같아. 더이상 멋있게 느껴지지 않았다. 

 

 영화는 긴 세월을 보여주며 스티븐슨이 남겨 놓은 아쉬운 나날들 그리고 우리가 놓치고 있을지도 모르는 나날들을 되돌아보게 한다. 

 

끗 - 

 

 아! 그래서 알프레도 이야기를 시작하다 말았는데, 결국 알프레도는 자신의 직업적 신념 그리고 자신이 모시는 주인의 행위가 옳고 정당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더욱 자신을 희생하여 브루스 웨인을 도운게 아닐까! (이상한 마무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