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은 왜 사시나요?" 대학 철학시간에 현장학습으로 방문한 한 절에서 서울대 화학과를 졸업하고 출가했다는 스님에게 무례하게도 저런 질문을 뱉은적이 있다. 사람이 사는 이유가 궁금했다. 오늘 리뷰할 책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의 저자 룰루 밀러도 나와 같은 의문에서 한 과학자를 추적하고 자신만의 길을 찾는다.
그는 절망이 청소년기에 자연스럽게 거쳐 가는 단계라고 생각하기는해도 그런 감정을 떨쳐내지 못하는 사람들은 경멸한다. 그는 그런 사람들을 "축 늘어진 정신의 유행"을 따르고 문학 속 "슬픈 왕들"을 흉내내는 게으른 모방자들이며, 그들이"지옥불 같은" 숨결을 내뿜는다고 비난한다. 죽음의 냄새라는 것이다.
사전정보 없이 보라는 편집자 K의 말에 제목만 보고 접근했다. 애초에 소설인줄 알았다. 스탠퍼드니, 물고기를 분류하기 위해 평생을 바친 사람이라느니, 캐롤 계숙 윤 이라느니 좀 생뚱 맞지 않은가. 읽으면 읽을수록 이거 실화 기반인가? 했는데 실화였다! 과학전문 기자 룰루밀러가 삶에 대한 질문을 쫓다가 한명의 분류학자의 의지와 업적에 꽂혀서 그의 일생을 추적하는 논픽션이다.
"넌 이 세상에서 중요하지 않아"
좀 더 자세히 내용을 들여다보면 룰루 밀러의 아버지는 세상 무엇보다도 '혼돈'이 강하다는 사실, 인간은 혼돈앞에 한없이 약하고, 무력하단 사실을 그래서 룰루 밀러 본인도 세상에(혼돈앞에) 크게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말해주었다. 룰루 밀러는 '그럼 사람은 왜 사는 것일까.'하는 고민에 휩싸였고, 혼돈이 모든 것의 정점이라면 아버지는 왜 저렇게 삶에 의욕적으로 사는 것인지 고민하며 성장한다. 그렇게 불완전한 모습으로 성장하고 성인이되어서 사랑하는 누군가를 만나 삶의 목적을 찾은 듯 했으나 결국 혼돈이 이기게 된다. 그녀는 그 어떤 혼돈이 와도 이겨내고 자신의 주장을 관철한 분류학자 데이비드 스타 조던의 일화를 접하고 그가 혼돈에서도 나아갈 수 있었던 이유를 집요하게 추적한다.
생명에 대한 이런 시각에는 어떤 장엄함이 깃들어 있다.
이야기는 예상치 못하게 한 과학자의 전기처럼 흘러간다. 그의 성장기, 그의 성격, 그가 발휘한 초인적인 의지, 그의 업적, 그의 말로까지. 룰루 밀러의 추적에 책 중반부에는 데이비드 스타 조단의 열렬한 팬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뒤로 갈수록 넷플릭스 다큐 <타이거킹>이 생각났다. 이 이야기는 정말 현대문명사회에서 벌어진 인일가? 싶은 사건들이 등장한다. 그래서 이거 소설이지 하고 생각했는데.. 진실은 내가 기대했던 것보다 끔찍했다.
그의 추적 과정이 어찌되었던지 룰루 밀러는 삶의 목적을 찾았다. 참 다행이다. 그 답은 어느 사찰의 스님이 해준 답과 비슷했다. '사람은 다 저마다의 이유를 가지고 살지요.' 그땐 스님이 답변을 회피한다고 생각했는데 나이가 조금 더 든 지금은 어렴풋이 스님의 말을 이해한다. 룰루 밀러도 스님의 말을 이해하지 않을까.
철학 인문서로 시작해서 과학 교양 - 범죄 스릴러 - 심리학 - 다시 철학으로 마무리 되는 논픽션이다. 글은 조금만 집중해도 술술 읽힌다. 생물학, 철학에 관심있는 사람들이 보면 꽤 재밌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독특한 구성이라 신기했다.
캐럴 계숙 윤 저서 Naming Nature, 인터뷰와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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