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동숲을 구매한지 어느덧 4개월이 지났다. 이시국에 이시국 게임기로 이시국에서 제작한 게임을 해서 조금 민망하지만 대체제가 없기 때문에 양해를.. 처음엔 황량한 무인도에 덩그러니 캠핑을 간다. 초기엔 파인애플셔츠를 입고 머리도 귀엽게 삐침머리를 했다. 놀러간 섬에서 너구리일당의 간계에 빠져 주민대표가 되었다. 섬이름은 내일도. 밝고 희망찬 이름으로 만들었다. 이러쿵 저러쿵 섬 생활을 열심히 하다보니 점점 마을이 되어갔다. 상점도 들어와서 축하행사도 진행했다. 너굴상점 오픈 축하 행사에 참여한 미랑이와 록키 언제까지 텐트에서 살순 없을거 같아서 집짓는걸 알아보았다. 섬에 오면서 지갑을 안들고 왔기 때문에 대출을 받아야 한다고 한다. 콩돌이와 밤돌이의 동공이 가운데 몰려있는게 딱 사기꾼들 상이다. 관상학적으..
최용수 감독을 보내며 - 선수와 감독 경력 화려한 경력의 그는 20년. 코로나 19로 리그 개최는 중단되었다. 급작스러운 휴식기에 부상선수가 많던 서울은 한숨 돌리나 했으나, 재개된 리그에서 그들의 모습은 전년도 3위라고 하기엔 엉망이었다. 최용수 감독이 20시즌 하고자 했던 셰필드식 3백은 실패한듯 보였고, 5연패의 수렁에까지 빠지게 된다. 주축 수비수인 황현수의 이탈과 주요 핵심 선수들의 에이징커브, 공격수로 성공적으로 자리잡은 박동진의 입대, 고액 임대생 페시치의 불만이 맞물리면서 팀 운영에 어려움을 겪는다. 최용수 감독은 눈밖에 난 선수는 쓰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있었는데 리그 초반 ㅇㅇㅇ은 왜안쓰냐 라는 비판에 ㅇㅇㅇ이 나오면 엉망진창인 모습을 보여주며 안쓰는 이유를 알게 했다. 문제는 최용수 감..
몰랐지만. 경외감을 느껴야할 스포츠 스타가 있다. 그는 화려한 해외리그 경력도 없고 예능에 자주 등장하지도 않지만 한국 축구계에서 그의 이름을 빼 놓아선 안된다. 아시아의 독수리 최용수 아시아의 독수리. 내 기억속의 최초의 최용수는 02년 월드컵예선의 모습이다. 대 미국전그의 독수리 슛은 머릿속에 각인 되었다. 골대 앞 1미터 에서 골을 놓친 공격수. 최용수는 '그건 나도 넣겠다'라는 온갖 조롱을 받으며 월드컵에서 모습을 더 이상 볼 수 없었다. 연대 출신인 최용수 선수의 볼을 뺏기위해 연고전 당시 '고대생 전체가 달려 들어도 역부족이 었다' 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어 아쉬움이 더 컸다. 최용수 감독 시대 내가 한창 상암에 다닐 때는 이미 최용수 감독의 시대 였다. 선수시절에는 축구에 큰 관심이 없어..